“제가 절제 전문 배우인데, 절제하지 못했어요.”(웃음) 

영화 <바이러스>는 배두나가 조금 가벼운 작품을 하고 싶은 시기에 만난 작품이다. 최근 그가 출연한 작품들은 주제도, 인물도 조금 무거운 편이었다. <바이러스>는 이유 없이 사랑에 빠지는 치사율 100%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물의 이야기다. 배두나는 그 바이러스에 감염된 인물인 옥택선 역을 맡았다. 함께 출연한 배우는 손석구, 장기하, 김윤석. 각각 모태 솔로 연구원, 택선의 오랜 동창, 치료제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전문가 역을 맡아 옥택선과의 스토리 여정을 경쾌하게 그린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작품의 촬영이 6년 전에 진행됐다는 것. 팬데믹 시기와 맞물려 개봉이 밀렸는데, 판타지적인 내용이라 생각하고 촬영했던 내용이 그사이 실제로 벌어졌다. 덕분에 바이러스에 걸린 사람들을 격리하고 치사율을 낮추기 위한 백신을 연구하는 등 영화 속 에피소드에 대한 이해가 쉽다. 인물들이 겪는 심리적인 고민과 갈등에도 더 깊은 공감이 가능하다.

오랜만에 발랄하고 귀여운 연기를 봐서 즐거웠다. 

나도 재미있었다. 내가 20대 초반에는 발랄했다.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강동원과 함께 출연한 <위풍당당 그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거기서 굉장히 발랄했다. 그런 (유쾌하고 밝은) 걸 상당히 즐겨하던 배우라서, 오랜만에 너무 재미있었다.

6년 전 촬영한 작품을 다시 본 소감은 어떤가. 

신선했다. 풋풋하고 젊더라.(웃음) 내가 귀여웠구나 싶기도 하고, 좋았다. 나는 아는 내 모습이지만 관객들에게는 새로운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생각도 들었다. 특히 <비밀의 숲> 이후 나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새로운 모습이라고 보실 수 있을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촬영한 작품인데, 영화 내용이 마치 현실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다.

2020년 1월에 코로나가 몰려오기 시작했는데 영화는 그 직전에 찍었다. 아시다시피 연구소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세계를 감염시키는 내용이다. 핑크색 방호복을 입고 찍을 때 판타지적인 면을 앞세웠는데, 더 이상 판타지가 아닌 게 되어버렸다. 그때 찍었던 엉뚱함이 팬데믹이 지난 지금 보니 현실감이 있는 것으로 바뀌었다. 되게 신기한 경험을 했다.

#20대 시절 떠오르는 발랄 캐릭터

배두나가 <바이러스>에 출연하게 된 것은 부정적이었던 사람이 바이러스에 감염돼서 밝아지고 행복해 보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이 되는 내용이 좋아서다. 현대사회에 필요한 이야기 같았다고. 배우 김윤석이 먼저 캐스팅되어 있었는데, 그것도 영향이 있었다. 평소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함께 작업해 보고 싶은 상대였다.

함께한 김윤석 배우와의 작업은 어땠나. 

윤석 선배는 존재만으로 공기가 달라지는 특징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하신 이야기인데, 축구선수들은 경기를 할 때 본인 눈앞의 공을 보지 않고 하늘에서 드론이 보는 것처럼 본다더라. 유능한 축구선수일수록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하던데, 윤석 선배는 그런 식으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관찰력이 있다.

두 사람의 케미도 좋았다. 

내가 저돌적이어야 윤석 선배가 맡은 이균 역할이 귀여워 보일 것 같았다. 어색하고 벗어나고 싶은 상황에서 이성의 끈을 놓지 않는 모습들이 잘 살았다. 이균 캐릭터가 입술을 통해 감염이 되어서 정말 귀여워지는 장면이 있는데 빠져서 아쉽다. 나중에 디렉터스 컷이 나와서 볼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

택선의 감정 과잉은 의도된 것인가?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었나. 

어느 정도 절제하고 보여주느냐는 사실 감독님이 정하시는 거다. 감독님 의도대로 수위를 맞추는 편이다. 감염 전 택선의 모습은 많지 않다. 보이는 건 없지만 그녀가 왜 감염 후에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눈물을 뚝뚝 흘리는지에 대한 전사는 생각했다. 왜 삶이 싫었을까 혼자 상상하고 모아두고 연기를 했다.

손석구, 장기하와 연기한 소감은? 

석구 씨는 많은 작품을 같이 했다. <센스8>, <최고의 이혼>에 이어 <바이러스>까지. 기가 막힌 반짝거리는 설정을 잘 해온다. 캐릭터가 돋보일 수 있는 설정을 하나씩 추가해 녹여내는 것을 잘하는 것 같다. 소개팅 장면에서 합이 잘 맞았다고 생각한다. 기하 씨는 연기하는 것 같지 않다. 너무 신기한 지점이다. 가수 장기하는 노래를 노래하는 것같이 안 하지 않나. 그게 장기하스러운 것인지, 작품에서도 그냥 거기 계속 있었던 사람 같았다. 진짜 능청스럽게 잘하더라.

작품에서 택선은 세 남자와 관계가 엮여 있다. 실제 배두나라면 어떤 스타일에 끌리나. 

츤데레 같은 이균(김윤석). 아닌 척하고 박사인 척하지만 그 사람은 F(감성적인 유형)다. 우울증 치료제를 개발하는 이유 자체가 F다. 나는 그런사람을 좋아한다. 내 MBTI가 INFP인데 먹고 살기에 나쁘지는 않다. 배우 중에 그 유형이 되게 많다. <비밀의 숲>에 출연한 배우 5명이 같은 유형이었다.

#작품으로 인연 맺은 절친이 많은 이유는

인터뷰가 진행되던 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깜짝 방문하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개인적인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그가 절친 배두나를 위해 삼청동 카페를 방문한 것이다. 영화 <공기인형> 이후 16년 정도 알고 지낸 두 사람은 자주 만나서 안부를 나누는 친밀한 관계다. 배두나는 봉준호, 박찬욱 등 거장 감독들과 작업을 한 배우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작품에 임할 때 혹은 선택할 때, 어떤 사람과 함께하느냐가 중요한가. 

그렇다. 인간적인 사람들을 선호한다. 연기관이나 영화에 대한 관이 있는 분들이 좋다. 좋은 작품을 만들려고 몸 사리지 않는, 그런 분들과 일하는 걸 좋아한다. 인간애가 있는 분들이고 ‘강약약강’이 아닌 분들이다.

그럼 거꾸로 배두나는 어떤 사람인가. 

스태프, 배우들에게 질척거린다.(웃음) 워낙 예민해서 작품을 하면 연기 아닌 모든 것에 신경을 쓴다. 스태프의 표정이 안 좋으면 ‘오늘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일까? 여자 친구랑 헤어졌나?’ 걱정하는 식이다. <바이러스> 촬영할 때도 그랬다. 어떻게 해서든지 인연을 이어간다. 다들 뜬금없다고 생각하신 예능 프로그램 <바퀴 달린 집>에 출연한 건 김희원 선배가 계셔서다. 장기하 씨가 쓴 책 《상관없는 거 아닌가?》에 책 추천사도 써줬다.

<바이러스>에 이어 8월 재개봉을 앞둔 <린다린다린다>도 명랑한 작품이다. 

<린다린다린다>는 자랑스럽고 좋아하는 작품이다. 못 본 팬들이 많아 안타까웠는데, 극장에서 볼 수 있어서 기쁘다. 더 뿌듯한 건 20년 전 영화가 지금까지 공감할 수 있고 회자된다는 거다. 소녀들의 학교 축제 밴드 이야기인데 여기서 영감을 받아 나온 밴드도 있고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고 해서 자랑스럽다. 역시 내가 안목이 좋았다 싶다.

지금 배두나의 꿈은 뭔가. 

내 꿈은 20대 때부터 계속 똑같았다. 지금 그 꿈은 없어졌지만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항상 이야기했다. 아이를 가져보고 싶었다. 자기 아이를 안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나는 굉장히 아름답고 완벽해 보인다. 나에게는 그것이 완벽한 인간상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배우로 활동하고 운이 좋은데, 그것만 안 이루어졌다. 지금 이 삶이 좋긴 하다.

배우로서의 고민은 뭔가. 

<청춘>이라는 작품을 통해 캐릭터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연기라는 것을 알았다. 그 연기관으로 아직 살고 있다. 내가 연기의 크기를 결정하는 건 스크린의 크기다. 크기가 큰 극장이면 오히려 절제하고, TV로 방영되는 드라마는 설거지하면서도 볼 수 있는 만큼 좀 더 친절하게 연기한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보는 것을 연구해야 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