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과 연결된 단단한 고리의 정체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햄릿>이 이호재,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캐스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화려한 캐스팅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젊은 배우가 있다. 바로 주역 ‘햄릿’ 역을 맡은 이승주(43)다. 배우 이승주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은 그가 극 속의 햄릿과 실제로도 닮은 구석이 많다고 얘기한다. 큰 키에 진중한 눈매, 울림이 있는 목소리와 유려한 움직임은 그가 햄릿을 소화할 수 있는 최상위의 배우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더욱이 믿음이 가는 성격 창조와 치열한 집중력, 눈물을 흘리되 의식하지 않는 진실성, 모든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순발력은 극장을 압도함과 동시에 적역(適役)이란 호평을 내리게 한다. 그러나 이 적역이란 평가만으론 그와 햄릿 사이에 연결된 단단한 고리를 설명하는 일에 한계가 있음을 느낀다. 그가 햄릿처럼 사유하기를 좋아하고 무엇보다 고귀한 인간으로 사는 일을 삶의 목표로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부터는 그의 연기에 대해 언급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와 햄릿이 배우와 배역의 관계가 아니라 동일한 인물, 하나의 자아로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참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마음속으로 참아야 하느냐,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오는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워 그것을 물리쳐야 하느냐. 어느 쪽이 더 고귀한 것일까.” 

배우 이승주가 연극 <햄릿>의 대사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느 쪽이 더 이득일까, 무엇이 더 자신에게 유리할까를 저울질하지만 그와 햄릿은 무엇이 더 고귀한 일인지를 고심하는 진실하고 사려 깊은 인물이다. 분명 그와 햄릿은 고난과 맞서 용감히 싸우다 장렬하게 죽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배우 이승주가 연기하는 햄릿은 유약하고 비의적인 성향의 햄릿이 아니라 사내답고 온정적이며 이성적이고 강직한 햄릿이다. 분명 우리가 고대하고 바라는 유형의 인물인 것이다. 

동경하고 절망하고 다시 사랑하고 

배우 이승주는 2008년 KBS 21기 공채 탤런트로 활동을 시작했으며, TV에서 연극 무대로 역행해 인기를 얻은 이례적인 인물이다. 연극열전 무대 (2014년)에서 보여준 완전한 몰입과 유려한 호흡, 국립극단 <유리동물원>(2014)의 톰을 연기하면서 흩뿌린 시적인 이상과 방황, 그리고 예술의전당 CUBE STAGE <뜨거운 양철지붕 위의 고양이>(2017)에서 선보인 브릭의 고독과 폭발력 등 오늘의 햄릿이 되기까지 그가 세차게 보여준 인물에 대한 탐구는 여행지의 풍경과 같은 오감 가득한 캐릭터 스토리로 남아 있다. 이어 각 인물의 시선으로 바라본 인간 이승주에 대한 객관화로 귀결되곤 한다.  

그런 그가 돌연 무대를 떠나 6년에 달하는 공백기를 만들기도 했다. 사람은 모름지기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과감하게 그만둘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연극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생소한 일을 하며 그는 극장에선 좀체 만날 수 없는 낯선 인격과 상황을 대면하며 자신이 왜 배우라는 일을 그만두려 했는지를 뒤늦게 알게 됐다. 진실한 연기를 위해 인간 이승주를 버리고 르네로, 톰으로 살아야 하는 일의 고단함, 브릭이라는 역할을 얻기 위한 긴 기다림, 그리고 그다음의 배역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그를 극장으로부터 도망치게 한 것이다. 

그러나 7년 전 불발됐던 조지 버나드 쇼의 <세인트 조엔>(2022)이 김광보의 연출로 국립극단의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되면서 그리워하던 연극의 품으로 그는 다시 되돌아올 수 있었다. 그냥 지나치는가 싶던 <세인트 조엔>과의 짧은 인연이 그를 더욱 큰 배우로 성장하게 하는 재기의 발판이 돼주었다. 이후 <벗꽃동산>(2023), <튜링머신>(2023), <와이프>(2023) 등이 연이어 성황을 이루며 그의 길었던 공백은 또 다른 가능성을 만들어낸 유익한 외유로 남게 됐다. 

확실히 그는 유머러스한 사람이 됐다. 농담을 던지는 일은 여전히 없지만 풍부한 어조, 다감한 억양, 생생한 비유를 들며 좌중이 편안한 미소를 짓게 한다. 이 세상의 채찍과 조롱, 버림받은 사랑의 아픔을 너끈히 이겨내며 불행과 화해하려는 선한 햄릿의 마음이 순간 느껴진다.

배우 이승주의 가장 큰 강점은 무언가. 

“연극에 대한 진실한 접근과 모색을 할 줄 아는 자세다. 그게 내 유일한 배우적 자질이다. 그러나 그 진실성이 매번 나오지는 않는다. 이렇게 장기공연을 하거나 2~3일에 한 번씩 무대에 서는 더블 캐스팅 방식에선 더 그렇다. 실제의 나를 버리고 무대에 서는 2시간여 동안 진실한 햄릿으로 사는 척 할 것이냐 아니면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할 것이냐, 그게 아니라면 아예 그렇게 살 것이냐다. 당연히 마지막이 최상이다. 하지만 그렇게 몰입하다간 배우도 병이 들기 마련이다.” 

‘햄릿처럼 하지 마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지금 공연 중인 <햄릿>이 아니라 이전 작품의 연출가들에게 빈번하게 듣던 지적이다. 지나치게 진지하고 무겁다는 말로 좀 더 쉽게 말하면 힘을 빼라는 얘기다.”

6년의 공백 기간 동안 무얼 했나.  

“몸으로 하는 일, 사업자등록증을 필요로 하는 일, 시간에 쫓겨가며 결정을 내려야하는 일 등 수많은 일을 했다. 그땐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면 많은 유형의 사람을 접할 수 있어서 나름 행복한 시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현실의 여러 문제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선 배우보다 더 입체적이고 강렬한 표정이 드러난다.”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한국 연극의 레전드 11명과 <햄릿>을 공연하고 있다. 중압감이 있을 것 같다. 

“며칠 전 정동환 선생님으로부터 무게가 너무 높다는 조언을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목소리가 아랫배로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목과 얼굴에서 나온다는 말씀이셨다. 그런 목소리는 새되고 날카로워서 관객을 불편하게 할 뿐 아니라 체력 소모도 크다. 연륜 있는 배우만이 들려줄 수 있는 산 경험을 접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하다. 80세, 90세가 되어도 무대에 설 수 있는 귀한 직업에 대해 잠시나마 조급해하고 불안해했던 일을 깊이 반성했다.” 

분장실에선 주로 무얼 먹나. 

“도시락과 생수가 전부다. 내 나이 마흔셋이 적은 나이도 아니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그 어떤 영양제도 보약도 먹어 본 적이 없다. 스스로를 주체 못 하는 극한의 감정을 쏟아내는 장면을 연기하고 나면 시야가 뿌옇게 흐려져 앞이 안 보일 지경이다. 문제가 있나 싶어 병원엘 갔는데 일시적으로 안압이 높아져 나타나는 증상이라며 조심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공연을 앞둔 배우에게는 아플 권리도 없다.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관객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라도 연기의 질과 배우 수명을 늘릴 수 있는 건강식을 준비해야 겠다. 

더 세련되고 진실하게 재현한
고전 연극 <햄릿>

 

2016년, ‘이해랑 연극상’을 수상한 9명의 배우가 출연해 28회 차 전석을 매진시켰던 화제의 연극 <햄릿>이 2022년에 이어 세 번째 시즌에 돌입했다. 이호재, 전무송, 박정자, 손숙, 정동환, 김성녀, 손봉숙, 남명렬, 길해연 등의 초연 멤버에 이어 그 사이 이해랑 연극상의 주인공인 된 김재건과 박지일이 가세하며 수상자는 11명으로 늘었다. 이렇게 화려한 캐스팅은 이 연극을 꼭 봐야 하는 이유다. 이 막강한 캐스팅보드에서 가장 굵고 큼직한 배역 ‘햄릿’ 역을 맡은 이는 젊은 배우 이승주와 강필석이다. 탁월한 배우로서의 자질과 어쩔 수 없는 중압감 사이에서 새로운 모습의 햄릿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거듭나는 이들의 연기가 고전 속 햄릿을 더욱 동경하게 만든다.

INFO  

일정 : 9월 1일까지(주중 7시 30분 / 토 2시, 7시 / 일 2시 / 월 공연 없음) 

공연장 :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티켓 : VIP 9만원 / OP 9만원 / R 7만원/ S 6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