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히말라야 기슭 신둘리 마을에 사는 13살 소녀 스리자나는 매일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집유소로 향한다. 작지만 부지런한 손으로 젖소의 젖을 짜 얻은 우유는 인근 시장으로 전달된다. 이렇게 매일 아침 우유를 짜 버는 돈은 151루피(약 1500원) 정도로, 한 달이면 약 20만~30만원에 달한다. 스리자나가 기르는 소의 이름은 ‘드림(Dream)’이다.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게 된 드림이는 이제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가족의 꿈과 희망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스리자나는 “젖소는 마을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에요. 이제는 꽃목걸이를 걸어줄 만큼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됐어요”라고 말했다.

한국 선진 축산 시스템 전수

코이카는 2023년 4월, ‘네팔 카말라마이시 소농 커뮤니티의 디지털 및 그린 전환을 통한 낙농 생산성 향상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은 한국의 축산 경험과 기술을 통해 신둘리 마을을 비롯한 카말라마이시 지역 소농들의 낙농 생산성을 높이고 자립 기반을 구축하는 것이 목표이다. 

네팔은 농축산업 의존도가 매우 높은 나라다. 네팔 국가통계청(NSO)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총 GDP(국내총생산)에서 26.27%에 달하며 이는 세계 평균(4%)에 비해 약 6배 높은 수치다. 농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축산업도 GDP의 약 9%를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농축산업이 네팔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지만 생산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네팔 농림축산개발부(MoALD)의 2023년 통계에 따르면, 288만마리의 착유 소(우유를 얻기 위해 기르는 소)에서 1년간 생산된 우유는 총 2억5600만ℓ로, 젖소 한 마리당 하루 평균 생산량은 약 2.45ℓ에 불과하다. 이는 세계 평균치인 6~8ℓ와 비교하면 크게 뒤처진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코이카는 비영리 국제개발 기관 ‘헤퍼인터내셔널(Heifer International)’의 한국 지부인 ‘헤퍼코리아’와 농림축산식품부, 농협중앙회 등과 협력해 네팔 낙농 산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 사업을 펼쳤다. 

이 사업을 통해 총 106마리의 착유 소를 네팔에 지원했다. 이 중 26마리는 네팔 농림축산개발부 산하 낙농 전문기관에, 나머지 80마리는 신둘리 카말라마이시 지역의 51가구에 전달됐다. 집유소와 냉장 보관 시스템 등 낙농 기초 시설도 함께 구축했다. 

신둘리 마을에 전달된 젖소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한국 축산업의 기술력과 농장주의 현장 경험이 녹아든 ‘살아 있는 기술 이전’의 상징이다. 코이카와 헤퍼코리아는 사업을 통해 한국의 체계적인 축산 관리 방식과 지속 가능한 낙농 시스템을 현지에 적용했다. 특히 신둘리 마을의 생산성 향상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젖소의 개체별 건강관리와 균형 잡힌 사료 배합, 위생적인 젖짜기 기술 등 선진 낙농 기술을 현지에 전수했다. 또한 일대일 사육 컨설팅, 공동 집유소 운영, 품질 검수 체계 등을 도입해 하루 우유 생산량이 기존 약 2.45ℓ에서 1.5배 이상 늘어나는 성과를 거뒀다.

낙농의 새로운 길 연 디지털 기술

이번 사업은 기후위기 대응과 지속가능성 확보라는 시대적 과제에도 함께 초점을 맞췄다. 히말라야 기슭에 자리한 신둘리 마을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기에 기후위기 대응은 주민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다. 이에 코이카와 헤퍼코리아는 태양광 냉장 보관 시스템을 구축하고 친환경 사료를 공급했다. 분뇨를 처리하기 위한 바이오매스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분뇨를 친환경적으로 처리해 환경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기존 사용하던 LPG 가스의 일부분을 바이오매스 에너지로 활용하면서 농가 소득도 향상시켰다. 분뇨를 통해 생산된 바이오매스는 한 달에 약 7㎏으로, 약 7달러 이상의 에너지 비용을 절약하게 되었다. 덕분에 현재 120여 가구가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코이카와 헤퍼코리아는 가축 지원에 더해 현지 낙농업에 디지털 기술을 도입했다. 카말라마이시 지역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기반 낙농 관리 시스템 ‘파머스 핸즈(Farmer’s Hands)’를 도입한 것이다. 국내 스타트업 기업 ‘바딧(Bodit)’이 개발한 파머스 핸즈는 코이카가 조달청과 함께 추진한 ‘2025년 혁신제품 수출선도형 시범구매(해외실증) 사업’에 선정돼 지난 6월 네팔 농가 18곳에 100대를 보급했다. 

파머스 핸즈는 젖소의 목에 디지털 기기를 부착한 후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과 연동해 소의 건강 상태와 행동 패턴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농민들은 소의 질병을 조기에 발견하고 사료 효율을 분석해 더욱 과학적이고 계획적으로 사육할 수 있게 되었다. 경험으로 사육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데이터에 기반한 낙농 관리로 전환된 것이다.

이러한 낙농업의 디지털 전환은 농민들의 지식 역량 강화로 이어졌다. 앱 사용법을 배우는 것에서 나아가 백신 접종 주기 관리, 발정기 관리, 위생적인 착유법 등 다양한 교육을 진행했다. 이와 함께 농가 내 유선 인터넷 환경을 구축하면서 정보 접근성도 크게 개선됐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

이러한 변화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전까지 가사노동과 단순 보조 역할에 머물렀던 여성들이 디지털 기기 사용법과 집유소 운영 기술을 익히면서 경제활동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파머스 핸즈를 활용해 젖소의 건강 상태를 기록하고, 우유 생산량을 관리하며, 마을 회의에서 직접 의견을 제시하는 등 전문 낙농인으로 성장했다. 한국의 축산 기술, 디지털 혁신, 그리고 현지 주민의 의지가 만나 만들어낸 변화는 한 마을의 경제 구조를 바꾸고, 여성과 아동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