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파니의 변신

“1% 변화가 99%를 바꾼다” 22조에 팔린 티파니의 변신

글 : 최보윤 조선일보 기자  |   사진 : 티파니앤코 홈페이지   |   그래픽 : 김의균

수억짜리 보석이 매매되는 하이 주얼리(초고가 보석 제품)를 다루는 브랜드 중 드물게 수십만원이면 살 수 있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은(銀) 제품으로도 흥행을 거둔 브랜드가 티파니다. 이미 주얼리 분야 최고의 반열에 오른 티파니가 갑자기 게임 체인저를 자처한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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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게임 체인저를 선언한 티파니


“많은 사람이 그 이름을 들어봤다 해서 모두가 그에 대해 좋게 생각해준다고 생각한다면, 그 순간부터 자만이고 자멸이다. 남들은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우리만 할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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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년 역사의 글로벌 주얼리 브랜드 티파니앤코(이하 티파니)의 안소니 레드루 글로벌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우리는 업계의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되려 한다”고 강조했다. 4월 12일부터 6월 23일까지 일본 도쿄 노드(Tokyo NODE) 갤러리에서 선보이는 ‘티파니 원더’ 전시회를 기념해 국내 매체 단독으로 도쿄에서 만난 자리였다. 

 

‘게임 체인저’란 기존 판을 뒤집는 자를 뜻한다. 보통 기득권을 밀어내고 새 승자가 되고자 하는 ‘추격자’가 즐겨 쓰는 말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고급 보석의 상징인 티파니와는 어울리지 않는 말로 느껴졌다. 이미 ‘승자’처럼 여겨지는 티파니 회장은 왜 이 단어를 끄집어냈을까. 그는 “고객들이 ‘이게 티파니지’라며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아니, 이게 티파니라고?’라고 놀라는 수준까지 도달하고 싶다”고 했다.


티파니는 창업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가 1837년 미국 뉴욕에 설립한 문구류·소품 매장에서 시작했다. 유럽 브랜드가 강세인 명품 시장에서 실용성을 빠뜨리지 않는, ‘미국적 럭셔리’ 정신으로 승부해 왔다. 배우 오드리 헵번 주연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배경처럼 ‘티파니’는 욕망과 현실의 충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아슬아슬하게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화 속 헵번처럼 겉모습이 화려하지만, 때로는 뉴욕의 평범한 아침인 베이글과 커피를 들고 있기도 한 양면적 모습이 티파니의 본질을 표현한다. 대중적이면서도 배타적이고, 배타적이면서도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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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티파니’ 아닌 

‘이게 티파니?’를 지향한다


Q 보통 ‘게임 체인저’는 도전하는 기업이 쓰는 말 아닌가.

“티파니는 헤리티지(역사성)와 모던함(현대성)이 독특하게 조화를 이루는 브랜드다. 다른 대부분 브랜드는 둘 중 하나다. 패션 브랜드는 계속 새로운 디자인을 쏟아내야 하기 때문에 모던함 쪽에 가깝다. 그래서 디자이너를 자주 교체하기도 한다.(패션 브랜드의 대표 디자이너 교체는 큰 관심사다.) 티파니의 경우 디자이너보다는 브랜드가 더 중요하다. 우리가 말하는 ‘게임 체인저’는 그래서 전복(顚覆)하려는 게 아니라, 역사적으로 내려온 디자인을 미세하게 조정함으로써 브랜드의 DNA를 극대화하려고 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Q 미세한 변화가 중요하단 뜻인가.

“역사가 긴 브랜드라면 1%의 변화가 여느 브랜드의 99% 변화에 준하는 발전을 이끌어낼 수 있다. 1%의 차이를 만들어냄으로써 소비자들이 기존에 알아내지 못했던 요소가 새로이 발견되기도 하고, 고착된 이미지가 파괴되곤 한다. 이 1%의 변화를 위해선 안주에서 벗어나 탐험가의 정신으로 다시 전장(戰場)의 맨 앞에 서야 한다. 이런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바로 (이번 도쿄 전시 명에도 포함된) ‘원더(wonder·경이)’를 만드는 조건이기도 하다. 변화라고 해서 반드시 본질 그 자체를 뒤집어엎을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Q 최근엔 샤넬·디올·구찌·돌체앤가바나 등 패션 브랜드도 하이 주얼리 분야에 뛰어들어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브랜드에 비해 티파니에 부족한 점은.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브랜드 중에서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브랜드(주얼리를 만들지 않다가 새로 내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1837년에 탄생한 티파니는 처음부터 트렌드·패션·경제·역사 등을 바탕으로 브랜드를 구축해 왔다. 티파니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어마어마한 기록이 보관(아카이브)돼 있고, 스타일 역시 남들이 쉽게 따라 하지 못할 만큼 다양하다. 우리의 과제라면 우리의 (이렇게 자랑할 만 한) 과거와 지금의 대중이 티파니에 대해 가진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1%씩 좁혀가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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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터뷰 중 ‘1%’란 단어를 많이 썼다. 패션·컨설팅 매체 ‘비즈니스 오브 패션’이 최근 전략 보고서를 통해 “소비 상위 1%를 사로잡아야 살아남는다”면서 티파니의 ‘특종·단독 전략’을 성공 사례로 소개한 것과 일맥상통했다. 코로나 특수가 끝나고서 경기 둔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고가의 고급 제품을 판매하는 럭셔리 분야가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건 최상위 VIC(Very Important Customer) 혹은 EIC(Extremely Important Customer)들의 소비 습관이 기존과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이 매체는 분석했다.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가 지난 2022년 펼쳐낸 럭셔리 업계 전망에 따르면 상위 2% 소비자가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한다. 영국의 유명 VIC 쇼핑 전문 업체인 루미네르(Luminaire) 역시 전체 럭셔리 부문 매출 중 고급 주얼리 매출이 2022년 40%에서 2023년 60%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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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티파니의, 티파니에 의한, 티파니를 위한


1%의 변화가 99%를 바꾼다


티파니는 2010년대 들어 매출 감소 위기를 겪다가 2021년 LVMH(루이비통 모에헤네시) 그룹에 인수됐다. 2008년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침체에 타격을 받은 데다 ‘티파니’라는 오래된 브랜드에 대해 젊은 소비자들 사이에 ‘고루하다’는 편견이 굳어지며 매출이 크게 줄었다. 여러 주주의 반발에도 LVMH는 2021년 보석 업계 사상 최대 인수가격인 158억달러(약 22조원)를 주고 내림세이던 티파니를 인수했다. 너무 비싼 돈을 냈다는 평가가 대세였고, ‘LVMH가 부족한 포트폴리오를 채우려 무리수를 두었다’는 우려도 나왔다. ‘업계 1위가 되지 못할 바엔 1위 업체를 사야 한다’는 LVMH의 경영 전략이 빚어낸 결과라는 분석도 나왔다.


티파니를 인수했을 당시 베르나르 아르노 LVMH 회장은 “우리는 단순히 회사를 매입한 것이 아니다. ‘티파니 블루(티파니의 푸른빛)’를 인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레드루 회장은 “티파니 블루는 색채연구가들 사이에 희망의 색상으로 분류된다”고 말했다. 티파니의 과거가 아닌, 미래에 베팅해 인수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터콰이즈에 가까운 밝은 파랑을 뜻하는 티파니 블루는 티파니라는 브랜드를 상징하는 색상으로 여겨진다. 매장 인테리어와 선물 상자 등에 사용되며 티파니에 의해 ‘컬러 상표’로 등록되기도 했다. 아르노 회장이 품은 희망은 그의 둘째 아들(둘째 부인의 첫째 아들)이자 2021년 1월 티파니 제품 및 총괄 부사장으로 임명된 알렉상드르 아르노, 그리고 같은 시기 회장으로 부임한 레드루를 통해 구체화했다. 2019년 44억달러에 그쳤던 티파니 매출은 2022년 56억5000만달러로 크게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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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성공한 전략이 있나.

“간단하다. 자신만 할 수 있는 것을 선보여야 한다. 이를 통해 충성 고객을 계속 늘려가는 것도 중요하다.”


Q 티파니의 경우에 그것은 무엇인가.

“‘평생 단 한 번뿐인’ 경험을 소비자에게 주기 위한 작업을 계속 하는 것이다. 언론사에 빗대면 남들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역사에 기록될 만한 특종을 하는 것이랄까. 남들과 같은, 혹은 비슷비슷한 기사에 노출되면 독자들의 반응은 어떨까. (반복되면 질리는 인간의 본성은) 그것이 다이아몬드든, 유색 보석이든, 은(銀) 제품이든, 뉴스든 똑같다. 소비자는 나만이 볼 수 있고, 나만 느끼거나 내가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얻길 원한다. 특히 초고가의 하이 주얼리를 대상으로 할 때는 브랜드와의 정서적 유대감이 필수다. 예를 들어 티파니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쟌 슐럼버제의 ‘버드 온 어 락(Bird on a Rock, 돌 위에 앵무새가 앉은 모양의 브로치. 이후 다양한 보석류 시리즈로 발전했다)’처럼 누구나 알아보되 상징성이 있어, 제품을 소비할 때 차별적 경험을 하는 제품이 중요하다.”


레드루 회장은 도쿄 전시를 포함한 이번 순회전을 통해 ‘대중은 알 수 없었던 티파니’를 보여주길 원한다고 밝혔다. 현존하는 가장 희소한 가치의 옐로(노란) 다이아몬드인 128.54 캐럿짜리 ‘티파니 다이아몬드’를 비롯해 기존에 거의 공개되지 않았던 500여 점을 새롭게 전시한다. 개인 소장품을 대여한 전시물, 해외 박물관에 보존되던 희귀작 등 국경과 세월을 뛰어넘는 티파니 제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를 소유하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지만, 관람객은 2000엔(약 1만8000원) 정도 입장료를 내고 이들을 볼 수 있다.


Q 수십~수백억원 짜리 제품을 보면 말문을 잃을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전시회 한 번 한다고 브랜드에 대한 이미지가 단번에 바뀔 수 있을까.

“맞다. 사실 티파니의 강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매장을 방문하는 것이다. 우리는 매장에 공을 많이 들이고, 단순한 가게가 아닌 랜드마크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랜드마크는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 중심지가 될 수 있는 장소를 뜻한다. 그럼에도 결국은 점원을 만나거나 상품 매대를 둘러보는 데 벽을 느끼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이들이 전시회라는 대안을 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것이다. 전시회는 라이브 콘서트라고 생각한다. 예술가가 공연하고 대중은 이를 보면서 즐기며 경탄하거나 감동을 느끼게 되는 식이랄까.”


그는 ‘더랜드마크’라고 이름 붙은 미국 뉴욕 5번가 본점에서 5월 말까지 열리는 특별 전시회를 언급하기도 했다. 현대미술작가인 아니쉬 카푸어, 데미언 허스트, 줄리앙 슈나벨, 제임스 터렐 등의 작품전이 지난 3월 말부터 2개월간 무료로 열린다. 도쿄 전시가 티파니 제품이 ‘미술관’이란 공간으로 들어간 형태라면, 뉴욕 매장엔 예술이 매장 안으로 진입해 전시되는 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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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위해 절반 이상 덜어낼 

각오도 해야”


Q 도쿄에 전시되는 제품 중 특히 주목할 것은.

“1877년 287.42캐럿의 옐로 다이아몬드 원석을 사들여 이를 128.54캐럿의 ‘티파니 다이아몬드’로 재탄생시켰다. 최적의 아름다움을 위해 거의 절반 이상을 덜어내는 작업을 했다. ‘최고의 결과를 위해서라면 눈앞의 작은 이익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이 같은 티파니의 정신을 ‘티파니 다이아몬드’에 담았다. 도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2021년 티파니 회장으로 부임한 레드루는 프랑스 출신으로, 프랑스 유명 경영대학원 SKEMA를 졸업했다. 미국으로 터를 옮겨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인 티파니, 해리 윈스턴 등을 거쳐 루이비통 북미 사장까지 20년 넘게 명품과 보석 업계의 중심에서 일했다. 그는 “서울에서 창립 190주년 기념 전시를 해보면 어떻겠냐”는 기자의 말에 눈을 크게 뜨고 “혹시 마음을 들켰느냐”고 말했다. “만약에 전시를 하게 된다면 일본과는 완전히 다른, 기존엔 전혀 볼 수 없었던 전시를 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Q 티파니는 미국 슈퍼볼(프로 풋볼리그 결승전) 등 트로피 제작으로도 유명한데. 트로피는 주얼리와 어떻게 차별되나.

“우리에게 (슈퍼볼 등의) 트로피는 단순한 ‘승리의 표식’ 그 이상이다. 19세기 티파니가 탄생했을 때 토대가 됐던 은 세공 기술력의 뿌리를 다시 기념하고, 장인 정신을 곧추세운다는 의미가 있다. 트로피는 이러한 전통에 대한 찬사다. 많은 노력을 들여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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