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여행 - 폼페이 유물전

2000년 전 폼페이로 시간 여행

담벼락 벽화, 괴테가 반한 청동 등잔…

글 : 박근희 조선일보 기자  |   사진 : 양수열 C영상미디어 기자

오는 5월 6일까지 서울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복합 문화 공간 ALT.1에서 ‘폼페이 유물전-그대, 그곳에 있었다(이하 폼페이 유물전)’가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품 중 폼페이 관련 조각상, 프레스코 벽화, 청동 조각, 도기, 장신구, 사람 캐스트 등 유물 127점을 볼 수 있다.
이 귀한 전시에서 눈여겨볼 만한 유물들과 함께 100배 즐기는 깨알 팁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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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유물전:그대, 그곳에 있었다’전에서 관람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물 ‘빅5’.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춤추는 마이나드’ ‘걸이식 청동 등잔’ ‘아프로디테 마리나’ ‘환상적인 건축 벽화’ ‘젊은 여성의 캐스트’.

 

“세상에는 수많은 재앙이 있었지만, 이토록 후세에 많은 즐거움을 가져다준 재앙은 드물 것이다.” 1787년 3월 폼페이를 방문하고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렇게 썼다. 그가 말한 재앙은 서기 79년 이탈리아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 폭발. 도시를 통째로 집어삼킨 끔찍한 비극이었지만, 도시는 그대로 화산재에 파묻혀 18세기 중반에야 극적으로 존재감을 알렸다. 폼페이는 고대 도시 로마와 고대인들의 삶을 상상하고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고대 유물의 보고(寶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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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기념 ‘폼페이 유물전: 그대, 그곳에 있었다’에선 조각상과 프레스코 벽화 등 작품들을 더 가까이에서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춤추는 마이나드’부터 ‘환상적인 벽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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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의 메인 포스터를 장식한 프레스코 벽화 ‘춤추는 마이나드’(왼쪽)와 대리석상인 ‘젊은 디오니소스의 거대 두상’.

 

조선일보사와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 전시 기획사 CCOC(씨씨오씨)가 공동 주최하는 이 전시는 ‘얼리버드’ 티켓만 10만장이 판매됐다. 개막 한 달째를 맞은 지난 2월 13일 누적 관람객은 4만3000명. 다녀간 관람객들 사이에서 사랑받은 ‘유물 빅 5’는 무엇이었을까. ‘폼페이 유물전’ 도슨트들은 이번 전시의 메인 포스터를 장식한 ‘춤추는 마이나드’와 괴테가 매료됐다던 ‘걸이식 청동 등잔’ 그리고 ‘아프로디테 마리나’ ‘환상적인 건축 벽화’ ‘젊은 여성의 캐스트’ 등을 꼽았다.


‘마이나드’는 디오니소스를 따르는 여성 추종자를 가리키는 명칭. 황홀경에 빠져 격렬한 춤을 추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프레스코 벽화인 ‘춤추는 마이나드’는 비칠 듯 얇은 드레스에 머리엔 화관을 쓰고, 왼손엔 솔방울 지팡이인 티르소스를, 오른손엔 탬버린을 든 모습이 여신 같기도, 요정 같기도 하다. 화산 폭발로 소멸한 도시에서 발굴된 밝고 아름다운 이미지의 작품이 비극적 상황과 대조를 이뤄 이번 전시 메인 포스터를 장식하게 됐다고. 춤추는 마이나드 옆엔 ‘왕좌에 앉아 있는 디오니소스’ 프레스코 벽화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한이준 도슨트는 “두 유물에서 두어 발자국 떨어져 보면 벽화 속 두 인물의 사랑이 이뤄지길 바라는 듯 조명이 하트 모양으로 비추는 게 관람 포인트”라고 했다.


회반죽을 벽면에 바르고 마르기 전 채색해 완성하는 프레스코 벽화는 이번 전시의 감수와 오디오 가이드 해설을 맡은 미술사학자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가장 주목하는 것이기도 하다. 출입구와 천장을 제외하고 벽으로 둘러싼 아트리움 형태의 저택이 많았던 폼페이엔 이런 프레스코 벽화가 흔했다. 무게만 250kg에 달하는 대형 벽화 ‘에로틱한 장면이 그려진 벽’도 볼 만하지만, ‘환상적인 건축 벽화’라는 제목을 단 프레스코 벽화 두 개를 자세히 들여다볼 일이다. 원근법과 색으로 입체적 효과를 냈는데, 따지자면 요즘 유행하는 착시 현상 그림인 ‘트릭 아트’의 원조 격인 셈. 200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온 프레스코 벽화를 통해 고대 그리스·로마의 회화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었는지도 가늠할 수 있다.



여신 아프로디테는 ‘시스루 룩’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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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대형 프레스코 벽화 ‘에로틱한 장면이 그려진 벽’. 무게만 250kg에 달한다. ② 청동 조각상인 ‘춤추는 파우누스’ 뒤편으로 여신 ‘아프로디테’ 대리석상이 이어진다. ③ ‘폼페이 유물전’을 찾은 권도영(초4)군이 흑회식 기법의 ‘암포라’와 적회식 기법의 ‘기둥형 크라테르’ 등을 비교하며 감상하고 있다.

 

‘원조’로 추정(?)되는 작품이 또 하나 있다. 바다에서 갓 나온 듯 몸에 착 달라붙는 얇은 튜닉(속옷에 가까운 기본적인 윗옷)에 하반신을 천으로 가린 대리석 조각상 ‘아프로디테 마리나’는 젊은 여성 관람객들 사이에서 ‘시스루(see through) 룩의 원조’란 애칭이 붙었다. 그 옆엔 목욕 중 옷을 걸치지 않은 채 수줍어하는 또 다른 대리석상 ‘아프로디테 카피톨리나’가 있다. 아프로디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랑과 미의 여신으로 비너스라 불렸다. 아프로디테 카피톨리나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듯 풍만한 몸매를 자랑한다.


이를 중심으로 그리스·로마 신화 코스도 이어가 볼 만하다. 폼페이는 그리스 영향력 아래 있던 휴양 도시로 로마로 편입되며 그리스와 로마 문화가 공존했다. 그리스·로마 신화는 폼페이인들 삶에 파고들어 있었고, 폼페이인들은 도기나 화병뿐 아니라 정원의 장식품 하나에도 신화 이야기를 담았다. 크게 다섯 섹션 중 하나도 ‘그리스·로마 신화 속의 사랑’으로 구성했다. 관련 작품도 전시장 곳곳을 채우고 있는데 그리스·로마 신화를 즐겨 본 이들에게 인기다.


아프로디테 카피톨리나 맞은편엔 ‘가니메데와 독수리’가 있다. 동시대 인간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되곤 했던 젊은 트로이아 왕자 가니메데와 그에게 첫눈에 반해 그를 불멸의 존재로 삼았다는 제우스(주피터)의 이야기가 연결되는 작품. ‘포토스’ ‘젊은 디오니소스의 거대 두상’을 비롯해 승리의 여신 ‘니케’, 목축의 신 ‘파우누스’ 등도 조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유리 전시관이 아닌 최소한의 거리에 관람 제한선만 두른 채 전시장에 나온 조각상들을 입체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게 이 전시의 ‘특혜’다. 전시 관계자는 “10년 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연 폼페이 유물전을 통해 한국 관람객들의 관람 수준을 높이 평가한 나폴리국립고고학박물관 측이 이번 전시에선 관람객들이 유물들을 보다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고 했다.



포도주 마시고 목욕·낙서 즐겼던 폼페이인


겨울철에 포도주나 음료를 데워 마실 때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청동 주전자 ‘사모바르’와 함께 포도주를 물에 섞을 때 사용한 그릇인 ‘종형 크라테르’, 주둥이가 넓은 항아리 ‘펠리케’ 등 도기도 비교해 살펴볼 수 있다. 신화 속 한 장면이나 연회, 풍경 등을 그려 넣은 도기는 초등학생들도 표면의 그림 보기가 수월한 높이에 있다. 도기 모양에 따른 종류와 그림 표현 기법인 ‘적회식’과 ‘흑회식’ 구별법도 안내해 일부 학생은 열공하는 분위기다. 그림이 적색으로 표현돼 있으면 적회식, 반대로 그림이 흑색으로 표현돼 있으면 흑회식이다. 


전시에선 기원전 4세기 적회식 기법의 도기들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적회식보다 오래된 기법인 기원전 6세기 흑회식 암포라도 있으니 찾아볼 것! 127점의 유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이기도 하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또 하나는 폼페이에서 발견된 낙서들이다. 5개의 주제 전시 시작점마다 ‘감미로운 사랑의 도시 폼페이로 저를 데려가 주세요’ ‘만약 당신이 없다면, 나는 신이 되기보다는 그냥 소멸되겠어요’ 등 낙서의 문구가 프롤로그를 대신한다. 발굴이 현재진행형인 가운데 지금까지 폼페이에서 발견된 낙서는 약 1만1000개. “사소한 고백부터 의미 없는 내용까지, 고대 폼페이인들에게 담벼락 낙서는 지금의 소셜미디어 기능을 담당했을 것”이라는 게 한이준 도슨트의 해석이다. 이 전시의 부제가 된 ‘그대, 그곳에 있었다’도 폼페이 어느 담벼락에 쓰여 있던 ‘가이우스는 이곳에 있었다’에서 따왔다.


퇴근 후 공중목욕탕에 들렀다 귀가하는 게 일상이던 폼페이인들의 모습이나 은거울, 뼈로 만든 빗과 머리핀, 화장품 용기를 보면 당대인들의 삶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시품 중엔 관람객들의 시선을 강탈하는 ‘깨알 유물’이 하나 있다. 털을 뽑는 데 사용하는 고작 8cm짜리 ‘족집게’. 1세기 족집게 모양이 현대의 것과 똑같아 이를 발견한 관람객마다 신기하고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최후의 순간’으로 기록된 캐스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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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형 영상과 함께 전시된 ‘젊은 여성의 캐스트’. 서기 79년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최후를 맞이한 고대인을 20세기 초 발굴 과정에서 석고 캐스트로 복원한 것이다.

 

이 전시는 관람객들이 고대 화려한 도시가 남긴 유물의 아름다움에만 빠져 있게 두지 않는다.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보이던 베수비오산이 화산 폭발 전조 증상을 보이는 미디어 영상부턴 다시 ‘폼페이 최후의 날’을 소환한다. 이어 마지막 작품으로 전시된 ‘젊은 여성의 캐스트’는 강렬한 결말로 관람객을 데려간다. 캐스트는 석고 등으로 물체의 원형을 복원한 것. 폼페이 사람 캐스트는 가장 극적인 발굴 스토리를 가진 유물 중 하나다. 스토리는 이렇다.


1800년대 폼페이 발굴 책임자였던 이탈리아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는 굳어버린 화산재 속에서 사람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화산재 속에 빈 층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챈 뒤 구멍에 석고를 부어 화산 폭발 이후 시체마저 사라진 고대인의 형체를 복원해내기에 이른다. 그리고 마침내 발견한다. 그곳에 있던 고대인들의 최후를.


2000년 뒤 한 점의 작품으로 전시장에 나온 젊은 여성의 캐스트는 스크린 속 몰입형 영상으로 되살아나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전시장을 숙연하게 만드는 이 캐스트를 두고 도슨트들이 내놓는 엔딩 메시지도 다양하다. 채보미 도슨트는 고대부터 전해오는 두 개의 익숙한 라틴어 문장으로 해설을 마무리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카르페 디엠(carpe diem)’. 죽음을 기억하라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라!”

 

알고 가면 좋을 ‘폼페이 유물전’ 관람 꿀팁


알고 가면 아는 만큼 보이는 법. 매표소에서 배부하는 전시 안내서는 꼭 챙길 것! 폼페이 지진 발생 시점부터 베수비오 화산 폭발, 도시 파괴, 매몰 과정을 담은 표와 함께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의 이름과 특징이 학습지처럼 쉽게 정리돼 있다.


도슨트 해설은 별도 예약 없이 평일 오전 11시와 오후 2·4시에 시작한다. 해설을 듣는 관람객 수가 그때그때 달라지기에 눈치 게임이 심하다. “오후 4시 해설이 그나마 여유롭다”고 현장 스태프는 말한다. 이 전시의 감수를 맡은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해설한 오디오 가이드(대여료 3000원)를 대여해 나 홀로 감상하는 것도 방법이다. 양 교수가 주요 작품을 쉽고 친근한 어조로 설명한다. 스마트폰으로 현대백화점그룹 통합 멤버십인 ‘H.Point’ 앱 내 ‘사운드 갤러리’를 통해 오디오 가이드의 일부 해설을 무료로 들을 수 있다.


관람료는 성인 2만 원, 어린이와 청소년은 1만5000원. 관람 시 2시간 무료 주차. 


전시장 내에선 ‘사진 촬영 허용’이라고 표시된 작품에서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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