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가 빈곤 퇴치의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가운데, 코이카는 오랜 시간 ‘한 끼의 힘’을 믿고 현장에서 답을 찾아왔다. 굶주림은 단순히 배고픔에 그치지 않는다. 배움의 의지를 꺾고, 건강을 위협하며, 결국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을 만든다. 하지만 따뜻한 식사 한 끼는 아이들에게 배움의 힘을 주고, 마을을 살리고, 미래를 바꾸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코이카가 유엔세계식량계획(WFP)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추진한 ‘지역 농산물 활용 학교 급식 사업(2020~2024년)’은 아이들의 삶뿐 아니라 마을과 공동체의 풍경까지 바꾸었다. 

“빨리 학교에 가고 싶어요”

코이카는 2020년부터 캄보디아 캄퐁츠낭, 뿌샷, 캄퐁톰 등 3개 주(州)의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270여 개 학교를 대상으로 급식을 지원했다. 덕분에 약 7만명의 아동이 직접적인 수혜를 받았다. 특히 급식에 사용하는 농산물을 지역 농가에서 조달해 학생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농가 소득 증대에도 기여했다.

사업이 시작되기 전 많은 아이들은 아침을 거른 채 등교했다. 학교에서 급식을 실시하는 곳도 있었지만 점심이 아니라 아침이었고, 그나마 국제기구가 지원한 쌀과 통조림, 콩 등으로 만든 단출한 식단이었다. 한창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양이나 영양 면에서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아이들은 배가 고파 수업에 집중하지 못했고 학교를 빠지는 비율도 높았다. 

하지만 코이카의 사업이 추진된 이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학기마다 지역 농민과 직접 계약을 맺고 쌀과 신선한 채소, 달걀, 고기 등 식재료를 조달했다. 아이들은 이제 지역 농민이 길러낸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영양가 높은 음식을 먹고 있다. 

점심 급식이 제공된 후 아이들에게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코이카와 WFP의 조사 결과, 급식이 제공된 학교에서 학생 출석률과 학업 집중도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 과거 결석률이 높아 학습 격차가 심했던 것에 비하면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영양 상태가 개선되면서 체력검사 결과 역시 긍정적으로 변했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던 학생들이 이제는 활기차게 수업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생님들은 “이젠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코이카의 급식 사업은 단순히 아이들의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동기와 의지를 북돋아 주었어요. 이제 아이들은 마음껏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는 힘이 생겼습니다. 이 작은 변화가 캄보디아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 농산물로 양질의 급식 제공

코이카의 급식 사업은 학교와 아이들뿐 아니라 지역사회 전체를 바꾸었다. 학교가 매달 꾸준히 농산물을 구입하면서 지역 농민 약 750명이 안정적인 소득을 얻게 됐다. 일부 마을에서는 협동조합까지 조직돼 품질 좋은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학교가 가장 중요한 고객입니다. 그동안은 농사를 지어도 팔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학교 덕분에 안정적인 수입원이 생겼어요.” 

한 농민의 목소리에는 긍정적인 변화에 대한 기쁨이 담겨 있다. 아이들의 식판에 오른 채소와 고기, 쌀밥이 마을 경제를 살리는 동력이 된 셈이다.

이처럼 학교와 마을이 맞물려 돌아가면서 경제적 활력이 생겼다. 농민들은 단순히 수익만 얻는 것이 아니라 식품 안전과 품질 관리, 계약 체결 방식을 배우며 새로운 시장 감각을 익히고 있다. 농업의 방식이 달라지고, 지역 경제가 자립할 수 있는 작은 토대가 쌓이고 있는 것이다.

코이카의 급식 사업은 식사를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코이카는 WFP를 통해 캄퐁치낭, 뿌샷, 캄퐁톰 3개 주 총 6개 학교에 부엌, 식당, 저장고, 세면대까지 갖춘 ‘스탠더드 패키지’ 급식 시설을 설치했다. 나머지 260여 개 학교에도 필요에 따라 조리도구와 위생 시설을 보강하는 ‘WFP 미니멈 패키지’를 제공했다. 이에 따라 수혜 학교에 약 1만5000개의 새 식판과 1500여 개의 앞치마가 제공되었고, 조리사들은 위생과 영양 교육을 받으며 한층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었다. 마을 지도자와 교사, 학부모는 운영위원회를 조직해 식단과 위생, 재정을 함께 논의하며 ‘우리 손으로 학교를 키운다’는 주인의식을 키웠다. 또한 캄보디아 교육부는 WFP의 기술 지원을 받아 매년 ‘연례 급식 레서피 경연대회’를 열어 조리사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동기를 북돋고 있다.

코이카는 학교 정원을 활용한 ‘라이프스킬’ 교육도 추진했다. 학생들에게 씨앗을 나눠주어 직접 키우게 함으로써 식재료에 대한 친밀도를 높였고, 다 자란 채소 일부는 급식에 활용해 아이들이 스스로 기른 먹거리를 맛보는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세계 학교 급식 모범 사례

코이카가 캄보디아에서 펼친 학교 급식 사업은 국제사회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열린 학교급식연맹(SMC) 고위급 회담에서 코이카는 캄보디아 사례에서 착안해 개발한 학교 급식과 지역사회의 연계성을 강화한 ‘지역 농산물 활용 시범사업 모델(Home Grown School Feeding, HGSF)’을 공유했다. SMC는 109개 국이 참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학교 급식 국제 협의체로, 한국은 2024년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번 회의에서 지역 농산물 활용 학교 급식 사업모델은 단순한 지원을 넘어 다른 국가에서도 참고할 만한 모범 사례(Best Practice)로 자리 잡았음을 입증했다. 코이카는 나아가 향후 시범 사업 모델을 국제기구와 협력해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어서 지역 농산물 활용 학교 급식 모델이 세계에 확산될 가능성을 열었다. 

캄보디아의 교실에서 아이들이 나누는 한 끼 식사는 단순한 점심이 아니었다. 이는 빈곤의 고리를 끊는 가장 확실한 열쇠이자, 교육과 성장, 그리고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의 증거였다. 코이카의 학교 급식 사업은 이제 국경을 넘어, 전 세계 어린이들과 지역사회의 삶을 바꾸는 지속 가능한 발전의 모델로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