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날카로운 파열음을 내는 상남자  

박민성은 팝과 발라드를 시작으로 하드코어 록, 성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의 창법을 자유롭게 구사한다. 긴 호흡의 고음이 최대 강점으로 그가 부른 뮤지컬 <벤허>의 명 넘버 ‘나 메셀라’는 어느덧 박민성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숨을 쉬지 않고 2옥타브 ‘레’ 이상의 고음을 15초 동안 우렁차게 쏟아내는 장면은 공연계의 화제가 됐으며 팬들은 그에게 ‘아가미 호흡’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명성황후>의 ‘홍계훈’ 역부터 <영웅본색>의 ‘마크’, <베르사유의 장미>의 ‘베르날 샤틀레’, 그리고 막 시작한 <쉐도우>의 ‘영조’에 이르기까지 무대를 장악하는 카리스마가 특별하지만 진정한 매력은 다른 쪽에 있다. 인물에 대한 깊은 해석에 바탕을 둔 자연스러우면서도 설득력 있는 그의 연기는 치솟는 파열음의 노래보다 더 큰 감동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절제와 폭발 사이에 놓인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고 간결하게 정리해 내는 그의 울림이 큰 목소리는 관객들에게 또 다른 카타르시스가 된다.

박민성은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기보다는 수많은 캐릭터를 단련해 가며 주역으로 올라선 ‘묵묵한 성실형’에 가깝다. 여러 번의 불운과 슬럼프를 견디며 19년의 배우 경력을 차근차근 쌓아온 결과가 하나 둘 빛을 발하고 있다. “열린 듯 닫힌 듯 돌고 도는 길, 눈뜨면 언제나 막다른 골목…” 2011년 박민성이 주인공 김생 역으로 출연했던 뮤지컬 <피맛골 연가>의 가사로 그가 자주 되뇌는 소절 중 하나다. 가사의 내용처럼 그는 난감하리만치 낯선 상황에서 스스로를 다잡고 의지를 다지며 처음의 목표를 향해 나아갔던 것이다. 

그의 가을 무대인 창작 록 뮤지컬 <쉐도우>는 과거의 어려웠던 순간을 떠올리게 할 만큼 전투적인 도전을 요하는 작품이다. 자신의 배역인 영조는 아들 사도세자를 제거해 유교 군주의 자격을 지키려는 인물이다. 폭군의 행각을 거듭하는 아들을 뒤주에 가둬 살해하는 것이 손자인 ‘정조’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임에도 영조의 진실을 헤아리는 일에 한계를 느끼곤 한다. 청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른 영조의 인생 전반을 타임루프하며 연기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그는 뮤지컬 <쉐도우>가 스스로의 내면을 다시금 바라보게 하는 소중한 작품이라고 얘기한다. 자신에게 강함과 고군분투를 강조했던 영조처럼 엄격했던 아버지, 그리고 집의 두 아이에게 아버지가 들려주던 경각심을 대물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무엇이 옳은 삶인지를 고심하게 됐다. 왕좌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버리며 그림자의 삶을 선택한 영조의 인생을 동조할 수 없지만 그의 진심을 이해하려는 무대 위 여정에 새로운 설렘이 일곤 한다.

<쉐도우>로 백암아트홀 무대에 처음 서게 됐다고 들었어요. 자신에게 잘 맞는 공간인가요.

“극장은 존재 그 자체로 감사한 곳이죠. 관객이 있고 연기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저는 만족해요. 예전엔 분장실의 습한 공기, 관객이 떠난 먼지 가득한 객석이 싫었는데 극장만큼 나를 가장 편안하게 감싸주는 곳은 없는 것 같아요. 제겐 집만큼이나 소중한 삶의 터전이죠.”  

아이돌 그룹 ‘미스터 S.N.A.’ 데뷔, 그리고 첫 뮤지컬 <그리스>로부터 19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하나는 제 흑역사이고 두 번째는 어처구니없는 시작에 불과하지만,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사건임에는 분명해요. 아이돌 시절에 이미 관객의 시선에 맞게 노래하고 춤춰야 한다는 프로 의식을 갖게 됐고 또 격렬한 댄스를 하면서 노래 불러야 하는 수련을 되풀이하면서 모션 동작이 많은 <그리스>를 별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꿈에 영조대왕이 나타나지는 않았나요.

“아직 그분을 뵌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 외가에 있던 뒤주 생각이 많이 났어요. 사촌 동생들과 숨바꼭질할 때면 그 속에 숨어들곤 했는데 어리고 몸이 작을 때여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얼마 전 교외에 있는 식당에 갔다가 장식으로 놓인 뒤주를 발견해 반가운 마음에 열어봤는데 사람이 들어갈 만한 공간이 아니더군요. 발 하나 들여놓을 수 없을 만큼 비좁은 곳에서 사도세자가 느꼈을 두려움과 숨막힘, 폐쇄공포증에 대해 생각하느라 잠을 못 이뤘어요.” 

공연을 준비하면서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사고로 다리 한쪽을 잃으셨지만, 평생 일을 하면서 가장의 의무를 다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셨어요. 빚 보증을 잘못 서서 집안 형편이 더 곤궁해졌지만 주변을 원망하지도 않으셨죠. 다정함 대신에 거칠고 무섭게 저희를 대했지만, 어린 나이에도 저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지금은 아버지와 친구 사이로 지내고 있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어울림을 즐겨하는 성격과 배우라는 달란트를 물려주신 것에 대해 늘 감사할 따름이죠.” 

아이들에게 어떤 아버지로 남고 싶으세요.

“아이들은 많은 사랑을 느끼며 커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이동 골짜기 아래 새소리가 들리는 집에서 지내고 있는데 그 속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참견이나 잔소리는 안 하려고 해요. 하지만 가끔 내 뜻을 몰라주는 아이들이 낯설게 느껴져 16세, 14세 아이들을 향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죠.”     

마흔세 살이 됐습니다.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예전엔 혼자 있는 시간을 좀체 감당하지 못했어요. 모니터 삼아 보는 연극도 반드시 동행이 있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달리기를 시작하면서 고독이나 적막을 좋아하게 됐어요. ‘좀 더 달릴까 여기서 그만둘까, 아니야 여기서 그만둘 순 없어, 더 멀리 나가는 게 좋겠어’라며 독백을 하는데 그건 내 마음에 던지는 대사기도 해요. 그 순간 불어오는 바람이나 갑작스레 쏟아지는 빗줄기는 대화를 더 풍성하게 만드는 특수 효과고요.”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극장 바닥에 낮게 깔리는 파바로티의 생기 가득한 음색, 돔 끝을 향해 치솟는 보첼리의 풍성한 성량에 대해 더 연구해요. 음악감독들의 스타일에 맞는 창법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유연한 사고인 것 같아요. 날을 세우거나 조급하게 생각하면 좋은 연기를 할 수 없어요. 마음을 편히 갖지 않으면 목은 쉽게 손상되고 염증 투성이가 되거든요. 예전엔 내 속내를 다 내보이며 화끈하게 얘기하고, 분명하게 선을 긋는 게 좋다고 여겼는데 그건 서로를 피로하게 만드는 미련한 짓일 뿐이었어요. 모든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아량을 갖는 게 더 중요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