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잊은 가수, 무대 위에서 꿈과 청춘을 노래하다

인터뷰｜이현우

나이를 잊은 가수, 무대 위에서 꿈과 청춘을 노래하다

글 : 이일섭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 사진 :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가수 이현우가 뮤지컬 〈맘마미아!〉의 21주년 무대에서 열연을 이어가고 있다. 1990년대 쿨한 오렌지족의 감성을 뿜어내던 데뷔곡 ‘꿈’과 최고의 이별 노래로 꼽히는 ‘헤어진 다음 날’을 부르던 매력적인 그의 모습을 2025년 뮤지컬 무대에서 만나는 일은 여전히 근사하다. ‘아바(ABBA)’의 멜로디로 채워진 주크박스 뮤지컬을 통해 영피프티의 매력을 전하는 가수 이현우를 만났다.

소년의 꿈과 감성을 지니고 싶다

가수 이현우는 시간을 정신적인 상태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여전히 젊다. 아들을 둘이나 키우는 아버지지만 그는 여전히 소년의 꿈과 감성을 간직하는 데 열심이다. 그가 ‘해리’ 역으로 다섯 번째 시즌을 맞는 뮤지컬 <맘마미아!>는 그의 몸과 마음을 늙지 않게 하는 ‘젊음의 샘’에 해당한다. 그는 이 무대를 통해 어른의 세계에서 닳고 휘어진 마음을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곤 한다. 더욱이 곧 다가올 60세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내공을 기르기까지 한다. <맘마미아!>의 스토리와 팝 넘버, 자이브 춤에서 시간의 흐름을 받아들이고 거스르는 지혜와 힘을 얻는 것이다. 매사가 느슨하고 서툴러 보이지만 그는 자신이 그려놓은 자화상대로 삶을 이어가는 자기 주도적인 일면을 갖고 있다.

‘꿈’ ‘슬픔 속에 그댈 지워야만 해’ ‘헤어진 다음 날’ 등의 히트곡을 통해 19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였던 그는 발라드와 록, 힙합, 일렉트로니카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한 싱어송라이터로도 정평이 나 있다. 가수의 영역을 넘어 <수요예술무대>에선 MC로 등장해 허비 행콕, 리 오스카, 요요마, 신영옥, 브라이언 맥나이트 등 세계 정상의 재즈·클래식·팝 아티스트를 소개하며 수준 높은 음악 세계를 갖고 있음을 증명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 KBS 쿨 FM <이현우의 음악 앨범>을 18년째 이어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음악에 대한 조예와 사랑 때문이다.

진심 담긴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이처럼 TV 음악 프로그램 MC, 라디오 DJ, 음식 프로그램 패널, 뮤지컬 배우 등 멀티 엔터테이너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지만 그는 “자신의 본령은 노래를 부르는 가수”라고 얘기한다. 그럼에도 신보 녹음을 위해 마이크를 들고 서면 눈앞이 깜깜해질 만큼 아무런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다. 데뷔곡인 ‘꿈’으로 KBS <가요 톱10>에서 6주 동안 1위를 할 무렵엔 다른 가수들보다 잘 부르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겼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노래란 ‘진심’을 담는 싸움이란 걸 알게 됐다. 가수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곡에 담긴 멜로디와 리듬, 정서를 청중에게 잘 전하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는 지난 14년간 <맘마미아!>에 출연하면서 관객이 보내는 엄청난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으며 동시에 관객이 만들어내는 엄청난 침묵을 마주하기도 했다. 절정으로 치닫는 무대의 갈등을 숨죽이며 지켜보는 그 순간, 정적을 깨뜨리며 시작되는 노래에 실린 ‘진심’과 ‘힘’이 자신이 레코딩한 노래 속에 담기기를 그는 간절히 바란다. 그런 생명력을 갖고 있지 않은 노래는 쉽게 지루해지고 금세 잊히기 때문이다.

엄청난 미식가로 정평이 나 있는데요. 오늘 점심은 무얼 드셨나요.

“아내가 손수 싸준 김밥을 먹고 나왔어요. 집에서 먹는 음식은 대체로 다 맛있죠. 라면, 깁밥, 소주, 활어회를 최고로 여길 만큼 제 혀끝은 감각적이기보단 더없이 평범한 편이죠. 음식이란 누구를 위해 만드느냐에 따라 식재료가 좋건 나쁘건 맛있고 먹기 좋은 요리가 되는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사랑이 깔려 있어야만 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속엔 사랑이 많다고 볼 수 있어요.”

이현우가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도나(최정원 분)와 명넘버 ‘Our Last Summer’를 부르는 모습. 자신의 배역인 해리의 매력이 부각되는 신으로 이 장면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다.

2011년 뮤지컬 〈맘마미아!〉에 합류할 땐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죠. 결혼을 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는데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고 여길 무렵이었어요. ‘주인공병’을 여전히 못 버리고 있던 시절이라 ‘세 명의 아빠’ 중에서 상대적으로 비중이 큰 ‘샘 카마이클’ 역이 주어지리라 기대했는데 막상 돌아온 건 ‘해리 브라이트’ 역이어서 낙심을 좀 했었죠.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 모습에 해리의 많은 부분이 들어 있다는 연출가의 판단이 정확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자신의 어떤 면이 해리와 닮은 걸까요.

“닮았는지 닮고 싶은 건지 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해리의 품성에는 소년 기질이 남아 있어요. 여리고 낭만적이고 그러면서도 사회의 규약이나 관습에 자유로운 면을 갖고 있죠. 처음에는 주역에서 약간 물러나 있는 비중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역할은 없더라고요. 모든 인물이 순간순간의 주인공이라는 걸 깨닫게 됐고, 그다음부터는 진짜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비중이 큰 역할 뒤에 숨어서 대충 하며 때우는 식이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60세, 환갑 등 후반생을 의미하는 말을 대할 때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말을 더 줄이고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겠다 싶어요. 안 해도 될 말을 하는 제 모습에 놀랄 때가 있거든요. 호르몬의 변화일 수도 있겠지만 나이 든 자의 오만이 아닌가 싶어요. 말실수로 후회하기보다는 무뚝뚝해 보이는 게 차라리 낫겠어요. 대신 더 많은 꿈을 가져가려고요. 창의적인 생각, 정신을 젊게 하는 단련이 제 버팀목이자 마지막 보루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