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롤모델은 춘향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하기 위해 글로벌 춘향선발대회에 참가하게 됐다는 김도연은 춘향만큼이나 진정한 여성다움을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진으로 선정된 순간 “한민족 얼 속의 춘향처럼 행동하는 미스춘향이 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95년에 이르는 남원골 미인대회의 아름다운 전통을 세상에 알렸다. 

어여쁘고 총명하며 진취적인 20세의 미스춘향 진 김도연은 한복의 생활화를 실현하는 복식 디자이너가 되는 게 장래의 꿈이다. 연세대학교 통합디자인학과에 입학해 한복의 여유롭고 견고한 실루엣에 대해 탐구해 왔으며,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의 한복에 대한 열정과 안목을 마음껏 발휘했다. 맵시 나는 저고리와 단삼 차림은 가장 빼어났으며 기품 있는 몸가짐과 동선은 진으로 올라서게 하는 매혹이 됐다.

그녀는 춘향이 보여준 자기결정권을 높이 평가한다.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을 선택하며 자신의 삶을 열어간 점을 본받으려 한다. 아직 춘향처럼 깊고 열렬한 사랑을 해보진 못했지만 짝사랑이든 미숙한 사랑이든 누군가를 좋아하고 위하는 감정은 사람의 마음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좋은 경험이라 여긴다. 언젠가는 춘향과 같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해보겠다는 속내를 슬며시 내비치기까지 한다. 

고전 속 춘향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얼굴

경연이 진행되는 동안 한 심사위원은 “경연의 다급한 일정 속에서도 늘 의연해 보이고, 노래를 부르든 워킹을 하든 참가자들 속에서 단연 돋보이는 기품을 갖고 있다”며 그녀의 진으로서의 자질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본선 무대의 진행을 맡은 MC도 그녀에 대해 “광한루원(廣寒樓園)으로 흐르는 요천(蓼川)의 물줄기처럼 맑고 투명한 얼굴”이라고 말한 것을 보면 누구나 그녀에게서 그런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고전 소설 속 춘향이 현실로 걸어 나와 우리 곁을 지나칠 때 빚어지는 경이로움과 반가움 같은 감정 말이다.

그녀가 글로벌 춘향선발대회 우승자가 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커피를 마시러 들어간 카페에선 “미스춘향 진 맞죠?”라며 인사하는 사람들이 생겼고 아버지도 “도연아” 대신 “춘향아”로 부르며 그녀가 갖고 있는 ‘춘향의 면모’를 일깨우곤 한다. 휴학 후 준비한 대회에서 오랜 꿈을 이루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게 된 지금, 그녀는 미스춘향 그다음의 단계를 생각하느라 고심 중이다.

‘이제 어떻게 하지?’라는 이 질문은 그녀에게 주문과도 같은 힘을 가져다준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근사하고 멋진 사람이 되게 하는 시발점이 돼주기 때문이다. 누가 권유하거나 부추겨서 춘향이 된 게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서 자신의 힘만으로 진이 된 것처럼 그녀는 다음 도전에도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마패를 지닌 이몽룡과 광폭한 호색한 변학도를 제치며 이야기의 제목을 자신의 이름으로 장식한 춘향처럼 말이다.. 

경연을 통해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나요.

“인내, 단련…. 경쟁 사회 속에선 개인의 도전의식과 자신감이 힘을 잃을 때가 많아요. 대회를 치르는 동안 층계참에서 반식욕장에서 힘겨워 울곤 했으니까요. 하지만 인생에서 그 어떤 일도 안 일어나는 것보단 일어나는 게 낫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모든 경험은 다 좋은 거니까요. 저는 지금보다 좀 더 뻔뻔하고 강해져야 할 것 같아요. 미스춘향 진이라면 적어도 어리고 미숙하단 소리를 들어선 안 되니까요.”

<2025 글로벌 춘향선발대회>에 참가하게 된 동기는 무언가요.

“미스춘향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교 때였어요. 한복 심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경연에 나가 전통 복식에 대한 제 소양과 맵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이 꿈은 접어둬야 했어요. 그런데 강의실에 매일 한복을 입고 오는 친구를 알게 됐어요. 청바지 위에 흰 저고리를 입는 식이었는데 그 모습이 잊고 있던 제 꿈을 일깨웠죠. 처음엔 진에 오른다는 생각은 추호도 해보지 않았어요. 잊고 있던 꿈을 실행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쁘고 감사할 따름이었으니까요.” 

경연 기간 내내 ‘진’의 물망에 오르며 주목받았다고 들었어요.

“2차 예심에서 심사위원 한 분이 ‘진짜 예쁘다’라고 말하는 걸 입모양으로 읽은 적이 있어요. 본선 무대를 본 엄마와 아빠도 ‘도연아 너밖에 안 보여’라며 격려를 해주셨는데 그때부터 진이 될 수도 있겠다는 예감과 암시가 여기저기서 나타났다고 해야 할까요. 주변을 딱 봤을 때 진이 될 것 같은 인물이 보이지 않으면 자신이 진이라는 ‘자뻑 담론’이 전설처럼 내려오는데요, 더욱 자신감을 갖고 대회에 임하라는 그 말이 진에 오르게 하는 힘이 됐던 것 같아요.” 

미스춘향이 되면서 달라진 점은 무언가요.

“예전엔 먹지 않았던 추어탕을 아주 좋아하게 됐어요. 합숙 훈련을 하는 동안 ‘새집’이라는 남원 맛집에서 추어탕을 먹곤 했는데 속을 든든하게 채우는 담백함이 월등한 음식이죠. 생선 비린내를 유독 싫어하는 제게 미꾸라지라니…. 처음엔 너무나 당황스럽고 난감했지만 명색이 춘향이가 돼서 남원 대표 음식을 외면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먹는 시늉이라도 내야겠다 싶었는데 어느 순간 그 구수하고 부드러운 맛에 매료되고 말았어요.”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준 대상에 대해 들려주세요.

“부모님은 제게 특별히 어떤 말을 해주거나 무엇을 해야 한다고 권유한 적이 없으세요. 늘 제가 하고 싶은 것을 들어주시며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셨어요. 저를 바라보는 눈빛 속에서 저에 대한 인정과 믿음을 읽어낼 수 있죠. 제가 무너지는 일은 있어도 부모님이 제 앞에 쌓아주신 견고한 사랑은 늘 그대로일 거예요. 나를 못 믿겠으면 나를 믿는 부모님을 믿자라는 일념으로 춘향 선발 과정의 여러 난관을 넘어설 수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