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은 2022년 발간된 에드워드 애슈턴의 <미키 7>을 원작으로 한 SF물이다.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소모품으로, 죽으면 다시 프린트되는 인간인 ‘미키’가 주인공이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17번째 죽음을 맞던 미키에게 예측불허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가 죽은 줄 알고 18번째 미키가 프린트된 것이다. 로버트 패틴슨이 주연 미키 역을 맡았고 나오미 애키, 스티븐 연, 토니 콜렛과 마크 러팔로 등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할리우드 스타들이 출연했다.

“원작 소설을 받은 건 2020년 여름이다. <옥자> 작업을 함께했던 제작사 플랜B에서 보내줘서 한 챕터씩 읽기 시작했다. 흥미가 생겨 가을쯤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 9월 베니스영화제에 심사를 하러 갔다가 초고를 던져줬다. 그해 11월 패틴슨을 만나 캐스팅 이야기를 나눴다. 모든 게 순조롭게 잘 진행되어서 2022년 가을에 촬영을 마쳤다. 2023년 한 해 동안은 포스트 프로덕션 작업을 했다. SF영화라 컴퓨터그래픽 등 후반 작업할 것이 많았다.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그렇게 작년에 개봉하면 딱 맞는 타이밍이었는데, 미국배우조합 파업으로 일정이 밀렸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의 작업이 전체적으로 6~7개월씩 밀렸다. 그래서 개봉을 못했고 그러다 보니 지금이 됐다. <기생충> 일정이 2020년 2월 3일까지 있었다. 개봉 종료를 그때로 본다면 만 5년 만이다. 6년 만이라고 하면 섭섭하다. 그동안 딱 6주밖에 못 쉬었다. 애니메이션 영화도 같이 준비 중이라 엄청나게 과한 노동을 하고 있었다는 말씀을 먼저 드린다.”

정확하게 짚은 대로 5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감독 커리어의 정점인 <기생충>의 차기작 작업인데 어땠나. 

부담을 느낀 적은 없다. <기생충>으로 화제가 됐을 때도 나는 계속 만들고 있었다. 지금 작업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작품도 2019년부터 천천히 준비해왔던 것이고. 그렇게 늘 작업의 흐름 속에 있다. 운이 좋았던 것일 수도 있지만 상에 대해서는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래서 이번 베를린영화제도 모두가 마음이 편했다. 경쟁 부문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다른 분들이 경쟁 부문에 갈 수 있게 우리는 비경쟁 갈라 스크린에 가고 싶다는 대화를 나눴었다.

베를린 현지 반응은 어땠나. 

런던, 베를린, 파리로 이어지는 숨 쉴 틈 없는 일정이었다. 베를린은 칸이나 베니스에 비해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민감하다는 영화제의 전통이 있다. 유럽 기자들을 만났는데 정치적인, 그러나 재미난 질문들을 많이 하시더라. 마크 러팔로에 관한 질문도 많이 하시고. 관객들 반응도 좋았다.

#정치인을 향한 경험 투사는 영화적 재미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 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다양한 담론을 만들어냈다. 베를린에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는 마크 러팔로라는 인물에 대한 반응도 그중 하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제법 많았고, 이탈리아에서는 무솔리니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말도 들었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체스쿠 부부 이야기가 오가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특정 정치인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많다. 의도가 있는 연출이었나? 

앞서 타임테이블을 유난히 정확하게 설명드린 이유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2021년 9월에 완성된 시나리오이며 촬영은 2022년 여름과 가을에 진행됐다(웃음). 베를린에서 만난 어떤 기자는 혹시 방에 투명한 크리스털이 있냐고 물어보더라. 서양에서 미래를 예견하는 점쟁이들이 쓰는 도구다. 그런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모두가 공감하는 독재자 캐릭터를 만들어냈나. 

다들 본인 나라에서 안 좋았던 정치적인 경험을 투사시켜서 보시는 것 같다. 마샬은 마크 러팔로의 첫 악역인데, 본인에게 그런 모습이 있냐면서 “오, 와이 미?” 하시더라(웃음). 귀여웠다. 독재자는 그런 귀여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것이 아니고 위험한 것이지만 실제 독재자들을 살펴보면 그들만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골수 지지자들이 존재한다. 마샬이라는 캐릭터도 냉철한 카리스마와 과학적인 선동을 한다기보다는 이상한 허점이 있다. 은근 재미도 있다가 ‘인간으로서 웃기네’ 하는 순간 섬뜩해진다.

미국 대선 기간 트럼프 총격 사건 벌어졌을 때는 놀랐겠다.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그 사건 이후 뉴욕에서 마크 러팔로, 프로듀서와 함께 다시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후반 작업을 위해서 다시 봤던 건데, 우리도 너무 놀랐다. 외국에서는 추가로 촬영해서 넣은 것이라고 오해하시는 분도 있더라. 모든 촬영은 2022년 하반기에 끝났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웃음).

# ‘미키’ 통해 만나는 인간의 슬픔과 잔인함

<미키 17>은 SF영화지만 광활한 우주보다는 인간이 보인다. 무대가 확장됐지만 전작에서 다뤄왔던 계급문제,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은유가 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번 작품이 더 <기생충> 같다”는 말도 오간다.

우주로 공간이 확장됐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물론 대서사적인 SF도 훌륭하다. <듄> 같은 작품은 보면 아름답고 자체의 웅장한 느낌이 있다. 나는 그런 영화를 찍더라도 양말에 구멍 난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으면 체질적으로 못 견딘다. 내가 SF를 하는 이유는 먼 곳, 먼 미래의 일일지라도 인간들에게서 나는 땀 냄새나 지지고 볶는 작은 삶들은 결국 똑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다. 

미키라는 인물도 그런 점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중심에 미키가 있다. 슈퍼히어로는커녕 측은하고 불쌍한 처지에 있는 친구가 이 모든 우주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이야기다. 2021년 처음 시나리오를 주변에 보여줬을 때 미국의 한 지인이 논평하기를 “인간은 미래에도, 첨단시대에도, 우주에서도 변함없이 어리석고 찌질하구나. 그게 솔직한 인간의 모습 아니겠냐”는 리액션이 왔었다. 그 반응이 반가웠다.

<미키 17>은 봉준호의 인생 첫 로맨스 작품이기도 하다. 섹슈얼한 SF를 완성한 소감은 어떤가. 

15세 관람이라고 하기에 수위가 낮지는 않았다. 나샤와 두 미키의 멋진 신이 있다. 원작 소설에도 있는 부분이고 나도 그 지점이 흥미로웠다. 쓰리섬이지만 둘 다 미키라서 쓰리섬이 아니지 않나? 인간이 이런 상황이 됐을 때, 둘인지 하나인지 정체성 문제를 짚을 때 그 자체로 흥미로운 신이다. 미키를 둘러싼 모든 상황들이 사실은 가혹하다. 거기서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준 인물이 나샤다. 장르 구분을 떠나 나샤의 존재 자체가 중요했다.

크리처의 존재도 중요하다. 

스토리 측면에서 중요하다. 처음에는 마크 러팔로와 토니 콜렛이 엄청난 혐오감을 퍼붓는다. 그들은 크리처도 경멸하고 미키도 경멸한다. 결국 스토리는 역전된다. 누가 손가락질 받아 마땅한 캐릭터고, 누가 인간적인지가 역전되는 것이다. 미키와 크리처는 서로 돕는 관계다. 미키가 “그들이 나를 구해줬다”라고 말한다. 그게 미키에게는 큰 의미였을 것 같다. 다들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데, 처음 보는 크루아상처럼 생긴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기를 살려준 거다.

미키를 통해 인간의 슬픔과 잔인함을 마주하게 된다.

미키는 실험실 생쥐처럼 쓰이기도 한다. 인류를 위한 백신을 하니까 자랑스럽다고 스스로 위로하긴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사회공동체 전체가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을 한 명에게 몰아준 다음 아무도 죄책감을 안 느낀다. “계약서에 사인했잖아. 너의 잡이잖아”라는 태도는 비겁하다. 우리도 몇 년 전 유난히 그런 사건이 연이어 있었다. 화력발전소에서 돌아가신 분도 있었고, 지하철 스크린도어 사고도 일어났다. 이후 일하는 조건이 얼마나 개선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은 돌아가셨던 분의 포지션에 다른 누군가가 일을 하고 계실 거다. 사건 자체를 잊어버리는 것이다. 일자리는 유지되고 인간은 계속 교체되는 슬픔과 잔인함이 있다.

엔딩에는 어떤 상징성이 있나. 

미키 한 명에게만 반복적으로 시키는 행위를 압축하는 단어가 ‘익스펜더블(소모품)’이다. 내가 죽어도 다른 누가 올 것이고. 다른 것들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을 극복하는 행위가 휴먼 프린터를 폭발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시스템 자체를 부수는 상징적인 행위다. 물론 SF영화라서 가능한 일이고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한 문제가 많겠지만.

<미키 17>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 

미키는 가혹한 상황에 처했고 온갖 견디기 힘든 경멸을 견딘다. 그럼에도 나샤라는 존재를 통해 파괴되지 않았다. 그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