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이야기 

최명 지음 | 조선뉴스프레스 | 1만5000원

원로 정치학자가 ‘칼’을 주제로 책을 펴냈다. 정치에선 쾌도난마(快刀亂麻), 인두지세(刃頭之勢), 도광양회(韜光養晦) 등 칼이란 단어가 들어간 말을 쓰곤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정치를 배제한 순수한 ‘칼 이야기’다. 

최명(崔明) 서울대 명예교수(정치학과)가 쓴 《칼 이야기》에는 머리 어지러운 정치 이야기 대신 동서양에 흩어진 칼 이야기가 종횡무진 펼쳐진다. ‘칼’이라는 무기를 중심으로 인류 문명의 역사를 풍부한 예시와 깊이 있는 해석을 통해 재조명한다. 

저자는 책에서 칼의 역사적 변천을 따라 석기 시대의 돌칼에서 시작해 청동기, 철기 시대를 거쳐 중세의 기사의 검, 근대의 레이피어, 그리고 총기의 등장 이후에도 여전히 전쟁터에서 그 역할을 다했던 군검까지 상세히 다루며 칼이 인간의 욕망과 시대적 요구를 반영하는 거울임을 말한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두 자루 칼을 비롯해 일본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의 이도류, 《삼국지》 관우의 청룡언월도, 장비의 장팔사모 등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최 교수는 또한 ‘혀의 칼’이라는 설검(舌劍)과 설도(舌刀) 이야기를 통해 칼이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언어적 폭력과 정치적 담론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말한다. 

“‘무딘 칼날의 명검’이란 말이 있습니다. 말도 무딘 것이 날카로운 것보다 낫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무딘 말’조차 침묵만 못한 것 아닐까요? ‘침묵은 금(金)이요, 웅변은 은(銀)(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이란 말도 있지요.”

때로는 날카로운 말이 물리적인 무기보다도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익명과 가면 속에 숨은 말과 글의 폭력이 난무한 시대에 꼭 새겨야 할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