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거침없이 요리하고 호령하는 모습과 달리 오늘 인터뷰 내내 굉장히 조용하네요.

“제가 하는 일과는 다른 세계라 낯설어서 그런 것 같아요. 창피하기도 하고요. 또 진한 아이라이너 때문에 오해를 많이 하시는데, 사실 저의 MBTI가 ‘극 I’거든요(웃음). 제가 하는 일 외에는 약간 뒤로 빠져 있는 내성적인 성격이에요. 주방에서 과감하고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는 모습이 많이 알려졌는데, 완벽주의라기보다는 책임져야 하는 위치이다 보니 조금이라도 실수를 덜 하기 위해서 철저해지는 것 같아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침체된 외식업계를 위해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지만 스타 셰프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그냥 요리사 100명이 모여 서바이벌 대결을 한다고만 들었어요. 촬영 현장에 가서 콘셉트를 듣고 놀랐죠. 처음에는 ‘백’ 요리사 20명도 얼굴을 보고 누가 나오셨는지 알았고, ‘흑’ 요리사 80명은 다 만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방송을 보면서 ‘누가 나왔었구나’ 했어요. 섭외를 받고는 서바이벌을 통해 나 자신을 테스트해 보는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평소 매장에서 손님들에게 선보일 수 없는 중국 요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고요. 한국에서 ‘중식’ 하면 짜장면, 짬뽕, 탕수육을 주로 떠올리잖아요. 이런 국내 외식업 환경에서 저는 다른 중식을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이번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통해 중식에 대한 이미지를 바꾼 것도 좋은 결과인 것 같아요.

“방송에서 보여줬던 바쓰는 중식에서 소소한 요리거든요. 그냥 조금 더 힘을 준 디저트예요. 그런데 호응이 엄청나더라고요. 중식은 ‘화려함 속의 섬세함’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중국에는 식자재가 엄청나게 많잖아요. 한국에서 배운 중식과 중국에서 배운 중식은 아예 다른 세계예요. 그러니 앞으로 알릴 게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정 셰프의 요리 철학이 궁금해요.

“저는 하고 싶은 것은 하고 살자는 주의거든요. 인생철학도 ‘안 되는 건 없다’예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고 사는데, 요리도 마찬가지예요. 직원들에게도 베이스가 양식이든 한식이든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을 풀고 더해서 새로운 것을 완성시키자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요리는 끝이 없는 세계 같아요. 그래서 계속 공부하고 있고 또 공부해야 하고요.” 

함께 출연했던 분들에 대해 느꼈던 점도 궁금해요. 가장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를 포함해 100명의 셰프가 요리하는 스타일이나 각자 쓰는 도구들이 다르다 보니 제 입장에서는 대결이 아니라 공부였어요. 중식은 웍, 칼, 국자면 요리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양식이나 한식 요리사 분들이 쓰는 칼과 제가 쓰는 칼이 다르고, 재료법이나 식재료도 중식에서 안 쓰는 것들을 쓰니까 모든 것이 새롭더라고요. 그래서 셰프님들에게 질문도 많이 했어요.”  

백종원씨, 안성재 셰프와는 어땠나요?

“외식 자영업계 우상인 백종원 선생님과 셰프계 우상인 안성재 셰프님 두 분의 입맛은 당연히 다를 것이고 평가가 다르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거기서 두 분의 합격을 받으면 최고인 거잖아요. 저는 매장을 운영하면서 대중성도 잡아야 하고 셰프로서 퀄리티 있는 요리도 만드는 사람이다 보니 그 두 분의 인정을 모두 받고 싶었죠.”  

손재주가 없어 유학 시절 수업이 끝나면 밀가루 공예 학원을 다녔다고요.

“맞아요. 막상 중국 요리를 배우다 보니 제가 손재주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중국 요리는 섬세함을 요하는데, 어떻게 해요. 그래서 학교 끝나면 밀가루 공예 학원에 다니면서 매일 밀가루 공예를 연습했어요. 제가 타고나지 않아 결정한 선택인데, 자신이 타고나지 않았다는 걸 아는 만큼 연습을 많이 해야 했고 그런 뒤 결과물에 만족하게 됐죠.”

도전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도전이라는 것 자체가 기회인 거죠. 그 기회를 이겨내면 최고인 거고 이겨내지 못했을 때는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성공과 실패보다는 또 다른 기회로 생각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는 것이 쉽지 않은 일 같은데요?

“제 인생 자체가 처음부터 ‘맨땅에 헤딩’이었어요(웃음). 아무도 뽑아주지 않는 주방에서 지내야 했기 때문에 잘해서 이겨내는 게 몸에 밴 것도 있고요. 요리는 제가 좋아서 시작한 것이니 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잖아요. 이런 경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저는 일이 재미있어요. 그 재미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그래서 젊은 친구들도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걸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가끔은 힘들고 외로울 때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있어요. 그런데 그럴 땐 일을 찾아 하면 돼요(웃음). 일이 항상 몰리다가도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불안해져요. 그래서 일을 더 찾는 스타일이에요. 중간에 비는 틈이 생기면 일을 끼워 넣어요. 일이 버거울 때도 많은데 저는 그것을 하나씩 쳐내면서 느끼는 성취감이 더 크더라고요. 주변에서는 일중독이라며 좀 쉬면서 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러면 저는 말해요. ‘이건 일이 아니라 취미다.’ 취미라고 생각하면 재미가 생기고 공부도 되고 또 다른 기회, 또 다른 경험이 되더라고요. 저는 정말 이 일이 재미있어요.”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나요?

“특별히 하는 것은 없고요, 아침에 눈뜨자마자 애사비(애플사이다비니거)를 마셔요. 혈당 관리와 다이어트에 좋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리고 아침과 저녁마다 방에 있는 철봉에 5분씩 매달려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건강한 것 같아요. 오히려 일을 안 하면 병이 나는 것 같아요.”  

바야흐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데요, 희망하는 게 더 있을 것 같아요.

지난 한 해는 전체적으로 외식업 자체가 되게 어려웠어요. 최근 붐업이 이뤄졌지만 언제까지 가겠냐는 불안감이 항상 있어요. 그래서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결국 끊임없이 노력하고 도전하면서 그냥 뚜벅뚜벅 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힘들다는 인식 자체를 안 하고 더 열심히 일하려 해요. 또 앞으로는 해외에 정지선의 요리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할 게 너무 많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