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막 짓누르는 애절한 음색  

정통 트로트의 매력을 뿜어내며 <미스트롯3> 선(善)에 등극한 배아현이 더 깊고 더 넓어진 음색으로 가을 무대에 나선다. 행사의 계절답게 강원·충청·경상·전라로 이어지는 스케줄이 살인적이지만 8년의 무명 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난 후 펼쳐지는 이 지역 레이스가 설레기만 하다. 배아현의 노래, 자신만의 레퍼토리로 팬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국 팬심 쟁탈쇼 <미스 쓰리랑>과 4박자 멜로디의 향연 <미스트롯3> 전국 투어 콘서트가 매주 진행되지만 지역 축제 특설무대의 공연은 그녀에게 남다른 감회를 가져다준다. 힘들다 못해 서럽기까지 했던 오랜 무명 생활을 견디게 한 작지만 활기 가득한 무대가 그녀에겐 고향집만큼이나 반갑고 소중하다. 

여흥이 넘쳐나는 진주 남강유등축제에선 어떤 곡을 불러야 할지, 먹을 게 가득한 광주 김치축제에선 어떤 의상을 준비할지 생각하다 어떤 음색으로 어떻게 노래해야 하는지에 대한 좀 더 근본적인 고민에 이르게 된다. 

<미스트롯3>는 그녀에게 무명의 배아현을 세상에 알리는 장이었으며 동시에 대중이 어떤 스타일의 노래를 좋아하는지를 알게 하는 기회가 됐다. 잘 꺾고 잘 돌리는 창법으로 라운드마다 고혹적이고 매끈한 음색을 선보였지만 객석의 관객들은 테크닉이 장착된 노래보단 진심이 담긴 노래, 마음에 와닿는 음색에 더 공감하고 반응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 후 그녀는 자신의 주된 음색인 비브라토가 더해진 코에 걸리는 소리 대신 맑은 생소리만으로 담백하고 편안하게 부르는 창법을 활용하게 됐다. 자신만의 독특한 음색을 만들기 위해 롤 모델로 삼았던 주현미의 노래를 의식적으로 멀리했던 것처럼 이번엔 자신만의 장기를 내려놓고 새로운 소리와 리듬을 찾는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미스트롯3> 선의 영예란 그녀를 스타덤으로 이끄는 도약대이자 서바이벌 오디션의 준우승자가 겪은 성장통의 다른 말이다. 노래만 잘 불러서는 라운드별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다. 동료들과의 불편하고 야릇한 부대낌을 웃으면서 넘겨야 하며, 복잡한 공방전에서도 자신의 호흡을 잃지 않는 여유와 집중력을 필요로 했다. 더구나 정통 트로트 외에도 팝과 재즈, 댄스뮤직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소화해야 했으며, 못하면 흉내라도 낼 만큼의 센스와 흡입력이 있어야 했다. 그녀가 이 모든 재능과 실력을 이미 갖추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녀는 “전혀, 아니다”라고 얘기한다. 오로지 자신과 싸우며 인내하고 또 인내해 이뤄낸 거룩한 승전보인 것이다.

정통 트로트에 더 많은 애착을 두는 이유는 무언가요.

“민요 이상으로 우리의 정서가 잘 담겨 있는 장르니까요. 멜로디도 단순하고 가사 내용도 제한적이지만 그 시절엔 이랬구나 하는 깨달음을 가져다주죠. <미스트롯3> 결승전 곡으로 ‘평양 아줌마’를 선곡했을 때 PD와 작가들이 대중성 없는 노래라며 난감해했어요. 나훈아 선생님의 열혈 팬, 트로트 마니아가 아니라면 결코 알 수 없는 노래지만 분단의 아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일깨우는 정통 트로트를 대변할 수 있는 노래죠. 시청자들께 반드시 들려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발동했다고 해야 할까요?” 

트로트 가수의 인기 지표인 지역 행사 무대에 서는 일에 열심인 것 같아요.

“자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아직 변하지 않은 곳으로 가보는 것이란 말이 있잖아요. 시장 한쪽에 세워진 가설 무대나 공원 스탠드에 차려진 간이 무대에 서면 처음 노래를 부르던 열아홉, 스무 살 때 기억이 나요. 훌륭한 가수가 돼서 세상에 좋은 기운을 전하자는 그 초심까지요. 그 각오를 기억하는 한 자신을 한 겹 낮추고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밝은 인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봐요. 가수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말에 저도 공감해요. 가수란 인생에 대해 노래하는 사람인데 좋은 노래를 부르려면 선하고 바른 마음을 갖고 있어야겠죠.” 

긴 머리를 고수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신체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머리 모양인데 제 기분에 따라 자르거나 파마를 하겠다는 생각을 아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이건 순전히 멋, 감각에 대한 식견 부족에서 비롯된 결과인데 평소에도 ‘완전 아니다’가 아니라면 스타일팀에서 결정한 콘셉트를 따르는 편이에요. 아무래도 긴 머리가 여러 가지 헤어스타일을 연출하기에도 수월하고 제 얼굴선과 큰 키에도 잘 어울리지 않나 싶어요.”  

노래하는 자신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무얼 발견했나요.

“무대에선 몰랐는데 관찰자가 돼 보니 오른손을 어디에 둘지 몰라 난감해하는 게 역력히 보여요. 노래할 때 오른손을 배 쪽에 두는 습관이 있는데 부드럽게 배에 가져가는 게 아니라 굳어 있는 손으로 누르고 있어서 불편해 보이더라고요. 고쳐보려고 노력은 하는데 개선은 안 되고 있어요.”  

<아빠하고 나하고>에서 보이는 어색하지만 훈훈한 부녀 관계가 연일 화제예요.

“아버지는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묵묵히 버팀목 역할을 해주신 분이세요. 하수구 아래에 있는 정화조를 고치는 일을 하면서 8년이라는 긴 무명 생활을 이어올 수 있도록 활동 자금을 대주셨거든요. 제가 쓴 돈이 억대는 넘을 것 같아요. 아버진 제가 가수가 되는 꿈을 스스로 접을 거라 여겼다고 해요. 하지만 저를 믿고 지원해 준 아버지의 마음을 쉽게 저버릴 순 없었어요. 이제는 제가 아버지의 버팀목이 돼드릴 차례예요. 조용한 산속에서 호젓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는 살가운 딸이 되려고요.”  

대학 진학과 프로 데뷔를 놓고 후자를 택한 이유는 무언가요.

“대학 진학을 희망했지만 뜻대로 안 됐어요. 실용음악과 수시 모집에 응시해서 1차, 2차 통과를 했지만 최종 면접 과정에서 진학을 포기하게 됐어요. 트로트 곡으로 실기고사를 봤을 만큼 트로트에 대한 심층적인 수업을 기대했지만 커리큘럼엔 재즈와 팝, 발라드가 대부분이어서 학교를 다니면 오히려 트로트 창법을 유지하는 게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욱이 학점을 받으려면 다른 장르의 음악과 노래로 시험을 봐야 하는 규정까지 있어서 대학 공부를 현장에서 대신하자는 결론을 내리게 됐죠.” 

트로트만큼 좋아하는 게 있을 것 같아요.

“옷에는 관심이 없지만 화장품을 유독 좋아해요. 특히 여러 색의 셰도와 컬러 팔레트를 사 모으곤 하죠. 볼과 눈두덩이에 알록달록한 컬러를 칠하면 개성과 입체감이 확 살아나는 점에 매혹을 느끼는 것 같아요. 파란색과 빨간색을 좋아하는데 셰도의 컬러는 핑크가 압도적으로 많아요. 또 하나는 제 반려견인데 이름은 ‘구찌’, 털이 긴 치와와예요. 스케줄이 없으면 집 주변으로 산책을 가곤 하는데 구찌보다 제가 더 신나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