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ODA 리포트

케냐 여성, 삶의 조연에서 주연으로 거듭나다

코이카가 만드는 ‘새로운 아프리카’

글 : 최덕철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   사진 : 코이카 제공

오는 6월 4~5일, 최초의 한국–아프리카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아프리카는 ‘지구촌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불리며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국 또한 아프리카에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서고 있다. 다양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을 추진하는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가 아프리카에서 펼치고 있는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아프리카’의 모습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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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 여성들의 경제적 역량강화를 위한 양봉키트 기증식

 

지난 3월, 아프리카에 우기가 시작된 이후 갑작스런 엘리뇨의 영향으로 케냐 등 동부아프리카 지역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면서 최근까지도 홍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100만달러(약 13억5000만원) 규모의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최근 사정은 이렇지만 홍수 이전의 케냐는 혹독한 가뭄을 겪던 지역이었다. 케냐는 국토 면적의 89%가 연간 강수량이 850㎜ 이하인 건조지역이다. 특히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시작된 가뭄은 홍수 이전까지 이어졌다.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2000년부터 3년간 이어지진 역대급 가뭄으로 이 지역 인구의 27%(440만명)가 심각한 식량위기에 처했고, 가축의 5%(261만마리)가 폐사했다. 


코이카는 가뭄이 시작된 2020년부터 케냐에서 농촌 여성의 경제적 역량강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코이카는 케냐 정부, 유엔여성기구(UN Women),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월드비전 등과 웨스트포콧, 라이키피아, 키투이, 이시올로 등 4개 주에서 협력하고 있다. 코이카는 농촌여성들에게 변화된 기후 환경에 맞는 농업과 목축업 기술을 전수해 식량을 확보하고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여성이 변화의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리더십 함양 교육, 자조 조직 지원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했다. 약 90억원이 투입된 이 사업으로 아프리카 여성 2964명의 삶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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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청년 리더를 키우고 싶습니다”

줄리아 냠부라 와치라(Julia Nyambura Wachira. 30)


라이키피아 주에 사는 줄리아 냠부라 와치라씨는 29세에 카프론 지역 주민 자조 조직의 대표를 맡았다. 앞서 그녀는 코이카가 제공하는 리더십, 금융, 마케팅, 농장과 농지 관리 등에 관한 전반적인 교육을 받으면서 지식을 쌓았다. 지역 주민들은 새로운 기회와 기술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마을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젊은 리더를 두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코이카 교육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참여한 그녀가 최종 리더로 뽑혔다. 자조 조직의 회원은 총 17명. 이들은 주기적으로 모여 양계, 감자 종자 생산, 약초 재배, 대출 서비스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정보를 나눈다.  


그녀는 자조 조직 대표를 맡으면서 지역 정부와도 직접 소통하게 됐다. 주민들의 이야기를 정부에 전한다. 지난해에는 라이키피아 북부 지역 선거구발전기금위원회 청년 대표, 케냐 청년연합 무코고도 동부지구 청년 리더로 선출됐다. 이제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지역사회 내에서의 갈등 이슈, 자금 문제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지역 주민과 청년을 대표해 목소리를 낸다. 


와치라씨는 앞으로 마을에 씨감자를 판매하는 매장을 더 짓고, 더 많은 씨감자를 생산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또 자신과 같은 적극적인 청년 리더를 더 많이 양성하겠다는 꿈도 갖게 됐다. 


“리더십, 농업, 금융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교육에 참여한 것에 대해 매우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젊은 리더로서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더 많은 청년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더 많은 동료가 책임감을 가지고 지역발전에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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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가득 찬 곡물 창고… 올해 저는 행복한 농부였습니다”

아비아 문야오(Avia Munyao. 46)


키투이 주에 사는 아비아 문야오씨는 세 아이의 엄마다. 옥수수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 학비를 대고 생계를 꾸렸지만 수익은 늘 일정하지 않았다. 2020년 팬데믹과 가뭄이 동시에 찾아오면서 살림은 더 어려워졌다. 2021년 코이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바뀐 기후환경에서 농사를 짓는 법, 염소를 돌보는 법 등을 가르쳐주는 수업을 들었다. 


가뭄에 강한 농작물이라는 수수부터 새로 심었다. 수수는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쑥쑥 잘 자랐다. 작년엔 총 20㎏의 수수를 수확했다. 1.3㎏은 다른 농부들에게 종자용으로 판매하고, 나머지는 양조장에 팔기 위해 보관 중이다. 또 녹두 90㎏을 수확해 5850달러(약 775만원)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옥수수도 다시 재배 중이다. 이번엔 코이카 프로그램에서 배운 ‘자이피트’ 기술을 적용해서 작물을 심었다. 전통적인 방법보다 구덩이를 깊게 파는 방식으로, 건조지역에서도 물 사용의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기후 스마트 농법이다. 


“이번 시즌에 저는 정말 행복한 농부였습니다. 옥수수가 이렇게 많이 수확된 것을 본 적이 없어요. 4자루를 수확해서 가격이 적당히 오르면 판매할 거예요.”


최근엔 그동안 거둔 수익금으로 농지를 더 매입하고, 염소 10마리도 추가로 구입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고작 4마리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총 35마리를 키우고 있다. 코이카 프로그램에서 배운 대로 염소들이 아픈 곳은 없는지 매일 살피고, 예방 접종도 시킨다. 염소들은 매일 우유를 제공한다. 그녀는 아침마다 8ℓ의 우유를 짜서 2ℓ는 가족들과 마시고 나머지 6ℓ는 판매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잘 자란 염소 8마리를 시장에 팔아 한국 돈으로 약 86만7000원을 벌었다. 


“염소는 신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어요. 초기 자본도 별로 들지 않고, 수익은 높거든요. 농촌의 여성들에게 경제적으로 매우 큰 버팀목이 됩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 그녀는 가계를 운영하고 세 자녀의 학비도 지불한다. 스스로 자신감이 생기면서 생활 반경도 넓어졌다. 마을 자조 조직 대표, 지역 교회협의회 대표집사 등 명함이 벌써 여러 개다. 


“키투이 주 가뭄은 심각했지만 이를 극복하면서 제 생활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이 나아졌습니다. 모두 새로운 것을 배운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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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대학 교육을 시키고, 새로운 집도 지을 겁니다”

셀리나 로론(Selina Roron. 50)


셀리나 로론씨는 웨스트포콧 주에서 아들 4명과 딸 6명을 키우고 있다. 로론씨의 하루는 바쁘다. 닭 15마리와 소 2마리, 송아지 2마리를 키우면서 2만여 ㎡ 규모의 땅에서 농사도 짓는다. 매일 우유 5ℓ를 인근 학교에 공급한다. 지역 교회와 학교에서는 운영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며, 케렐 중등학교에서 회계 담당자로도 일하고 있다. 


평범한 여성 농부이자 가정주부였던 그녀는 2022년 동료 29명과 함께 코이카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았다. 회계도 이때 배워 가계 경제를 계획성 있게 꾸리고 있다. 농사와 우유 판매로 얻은 수익으로 아이들 학비를 내고, 남은 돈은 저축한다. 지난해에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경작지 면적을 4만여 ㎡로 늘리고, 비료와 종자를 구매해 농사 규모를 확대했다. 


“앞으로도 사업을 계속 확장해 나갈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대학 교육을 시키고, 우리 가족을 위한 새로운 집도 지을 거예요.” 


남편은 로론씨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코이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여성들은 초기에 남편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많다. 케냐의 가부장 문화로 인해 남편들이 아내의 바깥 활동을 반대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해 함께 성평등 인식 개선 교육을 들었다. 이제 남편은 로론씨가 외부 일정이 있을 때면 아이들을 돌보고 가사일도 거든다. 


“여전히 집안일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지만 남성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 역할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 변화를 바탕으로 다음 세대를 키우면 장기적으로 문화가 바뀌고, 여성의 삶도 크게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프로젝트는 올해 마무리된다. 남은 기간 코이카는 사업 종료 후에도 효과가 이어질 수 있도록 주정부와 협력해 시스템 구축에 나선다. 임장희 코이카 케냐사무소장은 “후속 사업을 발굴하고 정부 예산을 확보해 현재 3000명 규모인 수혜 주민 규모를 1만명까지 확대할 계획”이라며 “사업 마지막 단계까지 지속가능한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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