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정서주

리틀 이미자, 마침내 최연소 트롯퀸 되다

〈미스트롯3〉 진(眞) 정서주

글 : 최보윤 조선일보 기자  |   취재 협조 : 취재협조 TV조선, WARNER MUSIC KOREA

우유만 마실 것 같은 정서주가 ‘동백 아가씨’를 시작으로 ‘비 내리는 영동교’ ‘물레방아 도는데’를 부르는 동안 사람들은 시큼한 막걸리와 우디향 가득한 위스키를 떠올리게 된다. 열여섯 그랑프리 싱어 정서주의 노래는 이처럼 넓고 깊은 매혹을 흩뿌린다. 이미자와 주현미의 데뷔 시절 모습을 똑닮은 최연소 <미스트롯> 진의 등장을 모두가 설레고 반가워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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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장인의 면모


2년 전쯤이었다. 유튜브 여기저기를 둘러보다 한 추천 동영상에서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짧은 귀밑 단발에 작은 얼굴을 반쯤 가린 커다란 안경을 쓴 한 소녀가 있었다. 녹음용 마이크 앞에서 수줍은 듯 노래를 부르는데, 어디서도 들어본 적 없는 신선한 목소리였다. 티끌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청초함이 얼음 결정만큼 투명하고 청정했다. 


그 청아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서주. 이제 막 중학생이 된 소녀였다. 그러나 마냥 어리다고만 할 순 없었다. 기교에 기대지 않고, 묵묵히 정도(正道)를 걸으며 자신의 일을 해내는 장인의 숨결이 느껴졌다. 한 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헤어 나오기 어려웠다. 클릭은 또 다른 클릭을 불렀고, 그녀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밤새워 둘러보고 또 둘러봤다. 


그저 노래를 들었을 뿐이었는데 필자의 마음에 큰 변화가 일었다. 명상곡을 듣는 것도, 묵상을 하는 것도 아닌데 소복소복 쌓인 눈 위에 첫 발자국을 내디딘 듯한 기쁨을 느끼게 했다. 무수하게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빛 속에 나 홀로 있는 듯한 숭고함까지 느끼면서 말이다. 내가 무얼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정서주의 노래를 듣다 보면 자꾸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된다. 어린 소녀가 그럴싸하게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었다. 


정서주의 목소리엔 정화(淨化)의 힘이 담겨 있는 것이다.  


유튜브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상 중 하나일 수 있었던 그녀의 노래를 다시 듣고 또 들은 건, 댓글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이미 ‘미스트롯에 나가 달라’ ‘미스트롯에서 보고 싶다’는 댓글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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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서주는 노래 봉사를 다니면서 만난 어르신들의 격려가 오디션 참여에 큰 동기가 됐다고 얘기한다. “우리 서주 노래 실제로 들었으니 이제 여한이 없다”는 말씀에 무리라고 여겼던 경연에 과감히 나설 수 있었다고. 2 <미스트롯3> 결승에서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리틀 이미자’ 정서주에게 진(眞) 왕관을 씌워주는 모습. 육십갑자(六十甲子) 이상의 차이를 보이는 신구세대의 하나됨을 지켜보며 시청자들은 트로트 멜로디의 힘에 또 한 번 감동했다.

 

<미스트롯3> 

또 다른 영웅을 만들다! 


TV를 보다가 화면에서 또다시 멈추게 된 건 <미스트롯3>에 도전한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정서주 유튜브에서 언제나 발견할 수 있었던 댓글이 현실이 된 것이다. 그녀도 댓글 쓴 이들의 소망을 그냥 지나치진 못한 것 같다. 


처음에 본 짧은 단발은 어느새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로 자라났지만 녹화 현장에서 확인한 열여섯 정서주의 목소리는 여전히 청초했다. 모난 데 없는 천연의 수정처럼 단단한 알맹이가 목소리 안에 실려 마이크를 뚫고 나왔다. 음반 녹음용으로 다듬어진 정제된 점만 봤다면 그녀에 대한 애정이 이처럼 깊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처음 도전하는 서바이벌 경연 무대는 신인의 패기와 두려움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견고한 목소리는 그대로였지만, 사무치는 나뭇잎처럼 바들대는 마음의 떨림이 입꼬리 끝에서 잔잔하게 퍼지고 있었다. ‘너무 떠는 것 같다’는 현장의 이야기도 전해졌다. 시작부터 쏟아지는 엄청난 주목에 부담도 적지 않을 듯했다. 그랬던 그녀가 마침내 <미스트롯3>의 왕관을 썼다.  


“무대에 대한 두려움이 원래 좀 많았거든요. 낯도 많이 가렸고요. <미스트롯3>에선 매 라운드 설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너무 떨렸어요. 이제 톱7과 함께하게 됐잖아요. 더는 안 떨릴 것 같아요. 톱7 언니들, 또 동생 유진이까지 함께 있어서 너무 편안해요. 믿으니까요.” 


지난 3월 7일 방송된 <미스트롯3> 결승전에서 왕관을 쓴 정서주는 “아직 제가 많이 부족한데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주셔서 감사드린다”며 울먹였다.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던 배아현도 한 발 뒤로 물러서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차세대 스타 탄생을 위한 ‘대관식’은 그 어떤 시즌보다 성대했다. 이날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 특별무대에 나선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가 ‘리틀 이미자’ 정서주에게 왕관과 트로피를 건네며 안아주는 장면은 세대를 뛰어넘은 음악에 대한 존중과 헌사로 남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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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로 이끈 

외할머니의 사랑  


정서주는 TV조선 <미스트롯3>에 출연하기 전, 이미 쟁쟁한 유튜브 스타였다. 2년 전 올린 윤수현의 ‘꽃길’ 커버 영상이 500만 뷰를 넘기며 그녀의 청초하면서도 순정한 목소리는 스타덤을 예고했다. 경연 전 이미 10만명의 구독자를 보유했던 팬덤은 이제 23만명으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하지만 그녀가 처음부터 가수를 꿈꾼 건 아니었다. 외할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손녀의 작은 마음이 오늘을 있게 했다.


“4년 전쯤 외삼촌이 마흔 조금 넘은 이른 나이에 병환으로 돌아가셨거든요. 코로나19까지 이어지면서 외할머니가 정말 힘들어하셨어요. 외가에 머물면서 말동무를 해드렸는데, 외할머니가 <미스터트롯>을 보시면서 처음으로 미소를 지으시는 거예요. 트로트가 뭔지도 잘 몰랐지만, 제가 흥얼대며 따라 부르니까 환하게 웃으시며 즐거워하시는 거예요.” 


휴대전화로 노래를 녹음해 할머니한테 들려드리다가 재미 삼아 유튜브에도 올렸다. 얼굴도 없이 목소리만 나오는 데 한두 명씩 사람들이 찾아 듣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외할머니 말고도 자신이 노래하는 걸 좋아해주는 사람이 있다니! 결승전 파이널 무대에서 부른 이효정의 ‘우리 어머니’는 외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당시를 떠올리며 찾은 노래다. 노래를 시작하게 된 건 ‘우연’에서 시작됐지만 그 우연은 전적으로 결승전에 서기 위한 운명이었던 셈이다. 


정서주는 트로트 장르에 클래식이란 레테르를 만들었다. 트렌디한 창법을 갖고 있으면서도 한층 정통하고 고급스러운 트로트를 선보였다. 레전드 이미자는 “정서주의 노래를 들어보니 수많은 커버곡을 부른 이들 중에서 정서주만큼 음정과 박자를 정확하게 부른 이를 찾기 어렵다”고 평했다. ‘정확한 음정, 박자, 악보 그대로’는 이미자가 강조해 온 창법 이론이다. 목소리가 악기 그 자체일 때, 노래의 아름다움은 극대화되고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5월엔 새 가요 예능 

<미스쓰리랑>에 출격!   


그녀는 라운드마다 진·선·미에 포함되며 최상위권을 유지했지만, 고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3라운드 데스매치에서 주현미 선생님의 ‘비 내리는 영동교’를 부른 이후였어요. 저도 제가 진이 될 줄은 몰랐는데, 포털 사이트 실시간 채팅창과 온라인 커뮤니티를 보는데 ‘저게 무슨 진이냐’는 글이 이어졌어요.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그동안은 제가 나오는 방송을 볼 때마다 항상 즐거웠는데, 그때부터 제 무대 영상을 보는 게 걱정되는 거예요.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서 땀이 막 나고.” 


애써 안 보려 해도 자꾸 자기 이름만 눈에 들어왔다. 그녀에게 그동안 ‘댓글’은 칭찬으로 가득한 세계였는데, 지옥이 따로 없었다. 파리해진 정서주의 모습을 다독이며 함께 울어준 이는 3라운드 데스매치 상대였던 나영(20)과 메들리 미션 ‘뽕커벨’ 팀원으로 만난 배아현이었다. 나영은 “네가 부르면 무조건 1등”이라며 그녀를 응원해 주곤 했다고 한다. 배아현은 준결승 신곡 미션에 나서는 정서주를 향해 “너 자신만 믿으면 분명히 잘 된다”고 독려했다. 정서주가 경연 중 ‘최고’로 꼽는 에이스전 ‘겨울 장미’는 배아현과 정서주의 합작이라고 했다. 


그 최고의 무대에 이어 정서주는 4월 25일부터 선보인 스핀오프 프로그램 <미스쓰리랑>에 출격했다. 들려드리고 싶은 노래가 정말 많다고 한다. 16세 소녀가 펼쳐낼 음악적 서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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