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하춘화

예순아홉의 리사이틀 퀸 그녀의 일상은 여전히 봄날

가수 하춘화

글 : 이일섭   |   사진 : 김연정, 이태경

인생은 계획했던 것보다 항상 더 복잡하다. 그 숱한 우여곡절에 휘말리기 싫어 노래만 부르며 살아왔던 삶. 가수 하춘화의 데뷔 63주년은 앞만 바라보며 달리는 경주마의 질주를 떠올리듯 ‘길고도 한순간 같은 정열’이다. 여전히 청룡처럼 파란 빛을 발하고 있는 한국 가요의 대모 하춘화와의 신나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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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정(情)은 야속하지 않더라!


“요즘 춘화라는 제 이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담장을 따라 피어나는 노란 개나리,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마을 어귀의 벚꽃…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번지게 하는 ‘봄꽃’처럼 내 소명은 이 세상에 기쁨을 가져다주는 일이죠. 저를 아껴주시는 많은 분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퍽 걱정이 되지만 63주년이라는 이 기점에서 새로운 열창을 선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데뷔 63주년을 맞았으니 그녀의 나이가 족히 80세는 되지 않았겠나 싶지만 그녀의 나이는 생각만큼 많지 않다. 1955년생으로 이제 예순아홉에 불과하다. 남진(79)·태진아(71)·전영록(70) 등 많게는 열 살 위의 가수들이 여섯 살에 데뷔한 그녀를 선배로 존대할 만하다. 까마득한 후배 혜은이와도 겨우 한 살 차이에 불과하니 오랜 관록에 비해 나이가 많이 적다는 점을 기억해 두는 게 좋겠다.


“사랑이 야속하더라! 가는 당신이 무정하더라! 잡지도 못하고 막지도 못하고 어쩔 수가 없더라! 여자이기 때문에!”


‘물새 한 마리’ ‘영암 아리랑’ ‘잘했군 잘했어’ 등 수많은 히트곡을 갖고 있지만 그녀의 큰 눈과 정감 어린 음색에 빠져들게 하는 ‘날 버린 남자’는 제2의 전성기를 열게 한 곡이다. 더구나 그간의 창법과 스타일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이 노래에 대한 그녀의 애착은 유독 크다. 개그맨 김영철의 성대모사가 이 노래의 명성과 인기에 힘을 싣기도 했다. 김영철의 ‘살은 붙인 희화’의 성대모사에 불편함을 보이는 배우 김희애와 달리 그 누구보다 더 즐거워하는 그녀의 반응에 사람들도 덩달아 웃고 만다. 200억 원에 이르는 ‘기부 가왕’의 넉넉한 됨됨이를 확인하는 흐뭇함이랄까. 소탈함과 화통함을 넘어 대인배 기질을 갖고 있는 우리 가요의 대모를 대하는 일은 유쾌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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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데뷔 음반 ‘당년 칠세 소녀 가수 하춘화 가요 앨범’을 가슴에 안아 든 하춘화. 그녀는 이 음반이 “내 인생을 가수로 이끈 운명”이라고 얘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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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그녀의 고향인 영암 계천마을에서 열린 부모님의 구순 잔치에서 마을 어르신들과 히트곡을 부르는 모습. 하춘화 가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사이 그녀 곁을 떠났다.

 


가장 좋은 것은 앞날에 남아 있으리!


하춘화는 ‘어린이 가수’란 말을 처음으로 우리 사회에 정착시킨 주인공이다. 최근엔 자신처럼 여섯 살에 뮤지컬 배우로 데뷔한 조카 손녀 하유나(12) 양과 듀엣곡 ‘엄마와 딸’을 발표했다. 어린 파트너와의 하모니를 통해 K-트로트의 궤적을 더욱 넓히겠다는 일념을 갖고서 말이다. 그리고 이 신보 프로젝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예기치 않은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특별한 재능과 음악성을 보이는 어린 유나를 보며 60여 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고, ‘시대란 이처럼 반복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간 정동원과 김태연의 음악에 감흥을 얻고 뮤지컬 <인어공주>와 <마틸다> 무대에 오르며 미국 현지에서 활동해 온 유나의 자유롭고 힘찬 보이스와 리듬은 감동 그 자체였다. 음악 신동이 내뿜는 가능성의 힘이 너무도 크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 것이다. 사회의 숱한 편견과 조롱을 이겨내며 자신을 정상의 가수로 올라서게 했던 아버지의 확신이 지금 자신이 느끼는 희망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벅차올라 눈물이 솟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자신에게 건넨 사랑과 희망을 후배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진다. 그녀는 박성온과 빈예서 등 트로트 무대에 활기를 더하는 어린 가수들을 누구보다 어여삐 여기고 귀하게 대한다. 방송에서든 행사장에서든 그들을 대할 때마다 관심과 애정을 쏟으며 노래를 좋아하는 것만큼 공부에도 열과 성을 다해야 한다는 말을 건네곤 한다. 삶은 자신을 알아가는 기쁜 과정이며 그 경로에서 학업만큼 자신을 지켜내고 발전시킬 수 있는 기틀은 없다는 걸 거듭 강조한다. 일찌감치 스타가 된 탓에 학교 다니는 일을 등한시할 수밖에 없던 상황을 후배들이 대물림하게 할 순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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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이미자 선생님도 <노래인생 60년> 이라는 기념 콘서트를 여셨는데 가수 경력은 비슷하세요?

“저보다 2년 선배님이세요. 데뷔 63주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제 나이가 80세쯤, 그러니까 이미자 선배님과 비슷한 나이인 걸로 알아요. 열아홉, 스물에 데뷔했으면 지금 80세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들을 하시죠. 하지만 저 아직 젊어요.”


고향 영암에 ‘한국 트로트 가요센터’를 열었다고 들었어요.

“제 희망이자 남은 생애의 숙제죠. 트로트라는 음악을 창법으로, 학문으로, 문화로 접하는 곳인데요, 무엇보다 후진 양성을 위한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어요. 현재는 소극장·전시관·가요 역사관·하춘화 전시관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교육이 가능한 아카데미 시스템을 준비 중이죠. 가요센터를 넘어 예술학교로 후세에 이어질 문화유산으로 만들어 갈 계획입니다.”


강산이 여섯 번, 일곱 번 바뀌는 시간이 흘렀지만 별로 변한 게 없어요.

“가수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더 커졌고 노래에 대한 열정도 변함이 없으니까요. ‘열정이 식으면 모든 게 끝난다’는 게 내 오랜 소신이죠. 얼마 전에 김형석 교수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104세가 되신 노교수께서 ‘인생은 60~75세가 황금기’라고 하시더군요. 30~40대는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지만 저는 백 번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 나이가 돼야 자기 자신에 대해 진정한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죠. 자신의 이름에 책임을 지는 것만큼 멋진 일이 어디 있겠어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또 누군가에게 내 경험치를 애기해 줄 수도 있고요. 그런 면에서 지금이 제 황금기인 게 맞아요. 후회와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아야겠죠.”


가수 인생 70년, 80년을 향해 어떤 목표를 갖고 계신가요.

“저는 ‘왕년에 내가 누구였다’ ‘과거 내 인기가 어디까지 올랐었다’ 하며 지난 세월에 매달려 사는 사람이 가장 우스워요. 과거의 하춘화가 어떤 인기를 누렸는지를 저 스스로 거론할 이유는 없다고 봐요. 오직 지금의 하춘화로 최선을 다해 노래를 하며 오늘의 관객에게 다가가기 위해 준비를 할 뿐이죠. 가수로 살아오면서 느낀 아쉬움? 후회? 왜 없겠어요. 하지만 쓸데없는 불평을 하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는 않아요. 지금도 앞으로도 주어진 여건에 맞게 분수를 지키며 열심히 사는 게 내 인생의 목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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